글로벌 1위 자동차 업체인 도요타의 ‘성능 조작’ 사건이 또 터졌다. 이번엔 차량 엔진, 지게차 등을 만드는 자회사 ‘도요타자동직기’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이들은 자동차 심장에 해당하는 엔진 성능을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소형차를 만드는 자회사인 다이하쓰가 에어백 성능 시험 등을 조작한 게 밝혀지며 조사가 진행 중인데, 또 다른 자회사에서도 유사한 성능 조작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는 성능을 조작한 회사의 성격과 조작 부품을 고려할 때 다이하쓰 때보다 더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다이하쓰는 도요타의 세계 제패 전략 차원에서 인수한 회사다. 이 때문에 지난해 성능 조작 사건이 터졌을 때 자회사 다이하쓰가 주된 비판의 대상이 됐고, 도요타는 옆으로 빠져 있었다. 하지만 도요타자동직기는 도요타의 모체(母體) 회사다. 창업자 도요다 사키치가 1926년 도요타자동직기를 세웠고, 여기에서 자동차 부문이 분리돼 지금의 도요타가 됐다. 다이하쓰 때와 달리,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그룹 회장과 사토 고지 CEO(최고경영자)가 직접 공개 사과한 것도 이번 사건의 심각성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도요타는 이날 “제조회사로서 근본을 뒤흔드는 사태”라며 “매우 무겁게 받아들인다”는 입장을 밝혔다.
◇성능 조작이 만연한 도요타 내부
30일 NHK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도요타자동직기는 자동차의 핵심 부품인 디젤 엔진 3종의 성능을 조작했다. 성능 테스트 때 ECU(전자제어장치)를 조작하는 방식으로 차량 출력을 일시적으로 높게 만든 것이다. 실제 판매 차량은 이보다 성능이 떨어졌지만, 표시·광고되는 제원은 높여 소비자를 속인 것이다. 이 디젤 엔진을 탑재한 랜드크루저, 렉서스 LX500, 하이에이스, 그란 에이스 등 10개 차종의 출하는 중단됐다. 이 차들은 우리나라엔 판매되지 않은 모델이다.
도요타의 성능 조작 스캔들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7년 자회사인 스바루, 2022년엔 상용차 자회사인 히노차가 배출 가스 연비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해엔 소형차 제조 자회사 다이하쓰가 에어백 성능 시험 조작 등 174건의 부정 인증을 저지른 게 밝혀졌다. 도요타가 출자해 5% 지분을 보유 중인 스즈키, 마쓰다도 연비를 조작했다가 적발된 적이 있다. 유사한 조작 사건이 반복됐지만, 도요타는 책임 있는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매번 자회사 직원 개개인의 양심 문제로 치부했다. 일본 아사히는 다이하쓰 사태 때 “도요타가 아닌 자회사만 부정의 주어로 사용된다”며 “오늘의 다이하쓰를 만든 건 도요타”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성과 집착, 개발 단축 압박 문화가 근본 원인
도요타 내부에서 이 같은 일이 연달아 일어나는 이유는 뭘까. 닛케이와 도요타 조사위 등에 따르면 성과와 수익에 집착하는 목표 지향적 문화, 비판을 어렵게 하는 상명하복 분위기 등이 성능 조작까지 이르게 된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다. 신차 개발 과정에 시간과 인원이 부족한데도 ‘양산일 준수’ 지시가 내려오면 이를 무조건 지키기 위해 영업 직원들까지 강당에 모아두고 개발을 돕는 일이 벌어진다고 한다. 3도어로 개발된 차량을 경영진이 5도어로 바꾼 경우도 있었는데, 일정을 맞추기 위해 성능 개선 관련 일부 과정을 건너뛰기도 했다. 이 같은 일정 단축 압박이 결국 성능 제고 대신, 조작을 통한 눈속임을 택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도요타 조사위는 “값이 싸면서도 성능 좋은 차를 단시간에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이 품질 부정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경영진의 현장 소통 부족도 지적된다. 도요타는 2000년대 들어 ‘세계 1위’, ‘1000만대 생산’ 등을 목표로 정하고 자회사 등에 ‘더 빨리 많이 만들라’는 주문을 넣었다. 현장에 과중한 일감을 부여한 것인데, 이게 달성되면 ‘극한으로 몰아야 성과가 나온다’라고 자화자찬식 경영 전략을 이어갔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사이 현장에선 눈속임과 조작이 계속됐지만, 경영진은 내부 고발 등이 있기 전까지 이를 알아채지 못했다. 사토 고지 CEO는 이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현장 근로자의 목소리를 중시하는 경영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