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차량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 앱티브는 지난달 31일(현지 시각) “현대차와 함께 설립한 자율주행 합작사인 모셔널에 대한 자본 투입을 중단하고 지분도 줄일 것”이라고 밝혔다. 모셔널은 지난 2020년 현대차그룹과 앱티브가 50대 50으로 투자해 설립했다. 두 회사는 모셔널에 2조5000억원씩 5조원을 투자했다. 앱티브가 전격적으로 모셔널에 대한 투자 중단을 선언하고 자금 회수에 나선 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손실 규모가 커졌기 때문이다. 2020년 2315억원이던 영업손실액은 이듬해 5162억원, 2022년 7157억원으로 커졌다. 투입한 비용 대비 성과가 나오지 않자 사실상 손을 떼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스타트업 투자 성과를 빠르게 회수하는 건 쉽지 않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도 한계에 다다랐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른 자율주행 업체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GM과 포드 등도 자율주행 자회사의 투자를 줄이고 오로라, 드라이브AI 등 스타트업도 수년째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이다.
자율주행 차량 업체들의 주행에 빨간불이 켜졌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밀려들던 투자금이 빠르게 축소·중단되면서 사업 규모나 인원을 대폭 줄이고 있다. 경기 침체와 고금리가 상당 기간 지속하면서 자금줄 역할을 했던 완성차 업체들이 당장 수익과 관계없는 자율주행 부문을 축소하고 있다. 3~4년 전까지 ‘자율주행’이라는 말만 붙으면 IPO(기업공개) 등을 통해 조 단위 자금이 들어오던 때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 것이다. 특히 최근 운전자 개입 없이 차량에 운전을 완전히 맡기는 ‘레벨 4’ 수준의 자율주행 구현이 어렵다는 회의론이 강해지는 것도 이런 분위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평가다.
◇곳곳에서 멈춰서는 자율주행
미국 GM은 지난 1월 30일(현지 시각) 자율주행 자회사인 크루즈에 대한 올해 투자를 10억달러(약 1조3000억원) 삭감한다고 했다. GM은 크루즈 전체 인원의 24%인 900명 감원 계획도 전했다. 이는 지난해 10월 미 샌프란시스코에서 발생한 사고 영향이 크다. 크루즈의 자율주행차가 사람을 친 뒤 6m가량 끌고 가서야 멈췄고, 이로 인해 운행 허가는 취소됐다.
지난 2022년 폴크스바겐과 만든 자율주행 합작사 아르고 AI를 폐업한 포드는 운전자 개입이 필요 없는 수준의 자율주행 구현을 포기하고, 대신 운전자 보조 시스템 강화 쪽으로 연구·개발 방향을 선회했다. 운전대·페달이 없는 자율주행 차를 만들겠다던 애플도 일반 전기차를 개발 중이다. 현대차그룹 역시 지난해 운전자 부분 개입만 필요한 ‘레벨3’ 시스템 탑재 계획을 밝혔다가 무기한 연기했다. 현대차 측은 “실제 주행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다양한 변수와 마주치고 있다”고 했다.
오로라, 드라이브AI, 포니 AI 등 한때 주목받던 자율주행 스타트업들도 지금까지 별다른 성과를 내놓지 못한 채 손실만 커지고 있다. 무인으로 운영하는 택시 사업에 집중하고 있지만, 걸음마 수준으로 수익과는 거리가 멀다. 현대차가 투자한 오로라의 경우 자율주행 트럭을 출시해 2027년 이후 수익을 내겠다는 계획이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자율주행 업체에 대한 평가는 곤두박질치고 있다. 대표 업체인 인텔의 모빌아이는 2022년 상장 전 500억달러(약 66조원) 이상 가치가 기대됐지만, 실제 상장 후 가치는 208억달러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한때 2000억달러 이상으로 여겨졌던 구글 웨이모 역시 300억달러 안팎으로 떨어졌다.
◇자율주행, 실현 가능성 회의론
완성차 업계 안팎에선 실제 운전자 개입 없이 차량에 완전히 운전을 맡기는 게 불가능한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자율주행 전문가인 게리 마커스 뉴욕대 교수는 “자율주행 업체는 딥러닝(기계학습)을 통해 AI를 학습시키는데 이는 일종의 암기”라며 “도로에서 일어날 수 있는 특이 상황은 무한대에 가깝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구현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가장 앞선 자율주행 기술을 가진 업체로 테슬라를 꼽는다. 테슬라 차량은 운전대에서 양손을 놓고 전방을 주시하지 않아도 스스로 다른 차를 추월하거나 장애물을 피한다. 레벨 2.5~3단계 수준이다. 그러나 테슬라 차량 역시 2019년 이후 700여 건의 충돌 사고가 발생해 여러 건의 민사 소송에 직면해 있는 상태다. 1~2건의 배상 책임만 인정돼도 기술 자체에 대한 타격이 불가피하다. 크루즈와 웨이모 자율주행 차에서도 지난해에만 30~50건의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했다. 뉴욕타임스는 “자율주행차가 사람보다 안전한 운전을 한다는 걸 입증할 증거가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