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최대 자동차 업체 폴크스바겐은 올해부터 유럽에서 판매하는 전기 SUV 타바스칸을 중국에서 만든다. 폴크스바겐은 중국에서 만드는 차량은 중국에서만 판매해 왔는데 이 원칙을 처음으로 깬 것이다. 폴크스바겐 측은 “중국 업체로부터 부품을 받아 중국에서 차량을 만들면 개발 시간이 30% 단축되고 비용도 20~40% 절감된다”고 이유를 밝혔다. 이는 EU(유럽연합)가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 조사 등 제재 수위를 높이는 시점에 나온 결정이다. 저렴한 노동력 외 부품 조달, 인력풀 등 장점을 고려할 때 중국 전기차 제조를 늘리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중국 전기차, 배터리 업체를 배제하려는 정책이 이어지고 있지만, 시장에선 반대로 중국과 손을 잡으려는 업체들이 늘고 있다. 대중 제재라는 거대한 흐름에도 전기차 분야에서 앞서 있는 중국의 제조력, 기술을 자사에 이식하는 게 더 이득이란 것이다. 실제 폴크스바겐뿐 아니라 일본 도요타, 닛산, 한국의 현대차, KG모빌리티 등도 중국 업체와 기술 제휴 계약을 맺거나 중국인 채용을 늘리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최근 “많은 업체가 제조 혁신의 단서를 찾기 위해 중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 한국 업체도 중국과 손잡아
일본 업체들도 예외가 아니다. 글로벌 1위 업체 도요타는 지난해 전기차 사업을 책임질 ‘BEV 팩토리’란 조직을 만들었는데, 이 조직 수장에 중국 BYD와의 합작회사 CTO(최고기술책임자)였던 가토 다케오를 임명했다. 가토는 도요타 내 대표적 중국통이다. 그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BYD는 일본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장비와 기술로 차를 만드는 회사”라며 “중국 방식의 제조 기술을 도요타에 이식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닛케이는 “BYD로부터 습득한 가토의 경험이 도요타 차세대 전기차 개발의 핵심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도요타는 중국과의 합작사에서 일하던 중국인 엔지니어들도 본사로 불러들이고 있다. 도요타는 일본 내 차량 제조 비율을 40%가량으로 유지하고 있을 정도로 ‘일본인이 만드는 차’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회사다. 이런 도요타가 중국인 엔지니어에게 대거 문호를 개방한 셈이다. 가토는 “일본인이든 중국인이든, BYD 출신이든 도요타 출신이든 동등하게 일해야 한다”고 했다.
닛산도 중국 둥펑차와의 합작사로부터 배운 기술을 자사 차량에 적용 중이다. 이들은 신차 개발 기간을 줄이는 프로세스를 배우는 데 매진하고 있다. 4년가량 걸리는 기존 개발 방식은 급변하는 추세와 맞지 않아 이를 1~2년 이상 단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업체도 ‘중국 손잡기’에 가세하고 있다. KG모빌리티는 BYD와 차세대 하이브리드 차량 시스템을 공동 개발 중이다. 이 개발 주도권은 시장 점유율 기준 글로벌 2위 배터리 업체인 BYD에 있고 KG모빌리티가 보조하는 형태다. KG모빌리티는 2025년 신차에 이 시스템을 탑재할 예정이다. 현대모비스도 중국 CATL과 배터리 조립 기술 협약을 체결했다. CATL은 배터리의 기본 단위인 ‘셀’을 더 많이 차량에 탑재할 수 있는 조립 방식을 고안했는데, 이를 현대차 등에 적용하기 위한 것이다.
◇중국 업체 직접 인수도 활발
향후 2~3년 전기차 수요 둔화가 점쳐지며, 차량 가격 인하가 화두로 떠오르는 상황도 이런 분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다. 가격을 낮추려면 수율(收率)을 올리고 비효율을 줄여야 하는데, 중국 내 제조가 이에 가장 근접했다는 것이다. 테슬라의 경우 아예 중국 상하이 공장 멤버가 중심이 된 ‘상하이팀’이라는 레드팀을 만들었다. 이들은 상하이 공장에 적용된 일 처리 방식을 미국, 독일 공장 등에 이식하는 작업을 맡았다.
중국의 기술을 추격하다 아예 중국 기업을 인수하거나 지분 참여를 하는 업체도 늘고 있다. 폴크스바겐은 중국 배터리 제조사 고션 하이테크 지분을 사 최대주주에 올랐고, 자동차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호라이즌 로보틱스, 스마트 조종석용 운영 체제 등을 만드는 썬더 소프트의 지분도 사들였다. 스텔란티스도 중국 전기차 업체 립모터의 지분 20%를 인수했다. 한 업계 전문가는 “중국과의 접점을 이어가는 게 중국 시장에서의 마케팅, 판매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이같은 협업 기조는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