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현대차는 차량 중앙 앞뒤에 탑재됐던 구동 부품을 바퀴 안으로 집어넣는 동력 시스템을 특허 출원했다. 차량 동력을 조절하는 감속기 등을 쪼개 각 바퀴 안으로 넣은 것이다. 동력을 내는 모터도 작게 변형해 각 바퀴 옆에 설치했다. 이에 따라 모터에서 만들어진 힘이 곧바로 바퀴로 전달되고, 바퀴 내에서 출력을 각각 조절하게 된다. 이 기술을 양산차에 적용하면 차량 공간 활용도가 대폭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배터리를 추가해 주행거리를 늘리는 것도 가능하다.
미래차 전환기를 맞은 완성차 업계가 또 한번 특허 출원의 격전지로 떠올랐다. 과거엔 자동차의 심장인 엔진 분야 정도가 주요 특허 전장(戰場)이었지만 전기차 등이 등장하면서 과거엔 주목하지 않았던 분야의 특허 출원이 확대되는 것이다. 특히, 최근 업계에선 ‘빅3′로 불리는 세 부문의 특허 다툼이 치열하다. 전기차 성능을 직접 좌우하는 구동계, 배터리 등 수명에 영향을 미쳐 주행거리를 좌우하는 ‘열 관리’, 자율 주행 부문 등이다.
본지가 특허청과 전 세계 특허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IP5(한국, 미국, 유럽, 일본, 중국) 국가의 특허 출원을 살펴보니 도요타는 빅3 분야에서 1만4000건가량의 특허를 출원해 가장 많은 특허 보유 업체로 파악됐다. 이어 현대차·기아가 8000여 건으로 2위를 기록했고, 이어 닛산(5300건), 혼다(4800건), 포드(4000건)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내연차 엔진 등에 집중해 온 폴크스바겐, 벤츠 등 유럽 업체의 순위는 상대적으로 낮았다. 이번 조사는 특허법상 특허 출원 후 1년 6개월 비공개 기간이 있어 2001~2021년까지 통계를 사용했다.
◇일본 업체 강세, 현대차 선전
전기차의 성능을 좌우하는 구동계의 최강자는 역설적으로 ‘전기차 지각생’으로 불리는 일본 업체였다. 상업화에는 뒤처져 있지만 원천 기술 확보는 게을리하지 않은 셈이다. 도요타가 2760건으로 1위를 기록했고 혼다(1361건)와 닛산(761건)도 2위와 4위를 차지했다. 현대차·기아는 823건으로 3위였다.
실제 최근 도요타는 전기차에 역발상으로 수동 변속기를 탑재하는 특허를 출원하는 등 전기차의 통통 튀는 승차감을 완화하거나 내연차처럼 운전할 수 있는 방식의 특허를 늘리고 있다. 지난해엔 전기차 기술 확보 등을 위해 ‘BEV 팩토리’라는 조직도 만들었다. 현대차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이들은 성능 개선에 집중하는 전통적 특허를 대거 늘리고 있다. 최근엔 자동차 앞 범퍼와 양쪽 앞바퀴 사이에 ‘액티브 에어 스커트’라는 바람막이 장치를 설치하는 특허를 냈다. 공기 저항을 줄여 전기차 주행거리를 늘리기 위한 장치다. 반면, 혼다나 포드 등은 실용성에 주목하는 특허를 많이 낸다. 혼다는 전기차의 경우 후면 하단부에 연료통, 배기 장치 등이 필요 없다는 점에 착안해 범퍼 부분을 서랍으로 만드는 특허를 냈다. 포드는 배터리를 차량 지붕에 싣는 방식을 고안했다.
하이브리드차 부문에선 도요타(9629건), 현대차·기아(5951건), 닛산(4050건), 포드(2728건)가 상위권을 기록했다. 눈에 띄는 건 그동안 하이브리드차에 소극적이었던 독일 업체들의 특허 출원이다. 폴크스바겐은 2016년 이후 306건의 특허를 냈고, 스텔란티스와 르노도 특허 출원을 늘리고 있다. 최은석 특허청 자동차심사과 수석심사관은 “유럽 자동차 움직임을 통해 유럽의 전기차 전환 목표(2035년) 시점이 후퇴하고, 하이브리드 인기가 2035년 이후까지 지속할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고 했다.
◇열 관리 부문 등도 경쟁 치열
전기차의 핵심인 주행거리를 좌우하는 열관리 분야에서도 도요타와 현대차 등이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다. 2015년 511건이었던 이 부문 특허 출원 수는 2020년 1271건으로 2배 넘게 늘었다. 도요타(678건)와 현대차(609건)가 가장 많은 특허를 출원했고, 이어 혼다(320건), 포드(254건), 닛산(164건) 순이었다. 전기차 강자로 떠오른 BYD도 162건으로 완성차 업체 중 6위를 나타냈다. 차에서 버려지는 폐열을 이용해 차량을 난방하는 식의 특허가 주로 출원되는데, 현대차의 경우 배터리 폐열을 파이프를 통해 시트나 바닥으로 보내 차량을 ‘온돌’ 방식으로 데우는 방식을 특허로 출원하기도 했다.
자율 주행 부문에선 IT 업체, 특히 중국 업체의 활약이 돋보인다. 바이두(1193건)가 가장 많은 특허를 등록했고, 상위 50위권에 14개 중국 업체가 이름을 올렸다. 현대차(567건)는 8위를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