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쏘렌토와 판매량 1~2위를 다투는 싼타페(5세대)는 작년 8월 출시돼 지난달까지 5만 2000여 대가 팔렸다. 싼타페 외장 색상은 9개 종류인데 절반이 넘는 5개가 유채색이다. 검은색·회색·하얀색 같은 무채색 일변도인 국내 자동차 가운데 유채색이 더 많은 것은 이례적이다. 실제 팔린 싼타페의 11.6%가 유채색이었다. 싼타페 같은 SUV뿐 아니라, 세단에도 유채색 선호 현상이 커지고 있다.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화려한 색상을 내세우는 ‘색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과거보다 유채색 종류가 많이 늘어난 것은 물론 최근엔 빛을 받는 정도나 보는 각도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는 색깔도 등장하고 있다. 싼타페에서 가장 인기를 끈 유채색 사이버 세이지 펄은 초록색과 베이지색이 섞였다. 싼타페 색상 개발에 참여한 이청 현대차 CMF(color, materials, finish·옛 칼라팀) 책임연구원은 “신차에 그동안 없던 색상 5개를 개발해 적용한 것은 이례적이다”며 “무채색은 트렌드 영향을 덜 받지만 유채색은 교체 주기가 빨라 새로운 색상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색(色)이 곧 경쟁력
요즘 자동차 업계에선 “자동차 색이 곧 경쟁력”이란 말이 나온다. 외장 색상을 바꾸는 것만으로 마케팅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프는 지난 1월 부분 변경한 뉴 랭글러를 국내에 선보이며 색상 변화에 초점을 뒀다. 한정판으로만 선보였던 블루·그린을 정식 색상으로 채택하는 등 유채색 모델을 4개에서 6개로 늘렸다. 그 결과 23.4%에 머물렀던 유채색 판매율이 신형 모델에선 47.9%로 올랐다. 한 국내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차의 연식 변경, 부분 변경을 할 때 성능과 기능 측면에서 두각을 내기 어렵기 때문에 색상 다양화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며 “무채색 차 시장은 이미 포화된 만큼, 특정 유채색을 내놨을 때 신규 소비자를 유입시키는 효과가 분명히 있다”고 했다. 볼보는 작년 온라인에서 준중형 SUV인 XC40의 세이지 그린 색상을 한정 판매해, 25대가 3분 만에 완판됐다. 현대차는 친환경차 전환 추세에 따라, 일부 외장 색상에 대나무 등 자연에서 추출한 성분을 포함하고 있다.
물론 국내에서 무채색 차량이 여전히 대세이지만, 유채색 선호 현상은 늘고 있다. 세계적 도료 업체 엑솔타가 내놓은 ‘2022 자동차 색 선호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유채색 선호(22%)는 세계 평균(18%)보다 높다. 한국 선호를 개별 색상으로 보면 흰색(34%), 검정(24%), 회색(16%) 다음이 파랑(9%), 빨강(6%)이다. 은색(4%)은 여섯 번째. 2013년 조사에선 한국(17%)이 전 세계 평균(24%)보다 유채색 선호가 낮았지만, 10여 년 사이 역전된 것이다.
◇유채색 인기 SUV가 주도·세단도 약진
활동성이 강조되는 SUV 시장이 크게 성장했다는 점이 유채색 선호 현상의 배경으로 꼽힌다. SUV에선 유채색이 무채색보다 인기를 끄는 현상이 잦다. 현대차 경형 SUV 캐스퍼의 톰보이 카키(27.4%)는 언블리치드 아이보리(30.7%) 다음으로 많이 팔리며, 전체 색상에서 2위를 차지했다. 아틀라스 화이트(24.9%), 타탄 그레이 메탈릭(11.9%) 등 무채색보다 많이 팔렸다. 한국 GM의 소형 SUV 더 뉴 트레일블레이저는 피스타치오 카키(14%)가 화이트(43%), 블랙(21%) 다음인 3위를 차지했다. 무채색인 그레이(11%)를 뛰어넘은 것이다. 같은 중고차라도 유채색 모델 가격이 무채색보다 낮았는데 최근에는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중고차 플랫폼 케이카 관계자는 “중고차 시장에서도 유채색 인기가 과거보다 늘었다”고 했다.
중장년층도 차를 개성 표현의 수단으로 삼으며, 이들이 많이 타는 고급 세단에도 유채색이 약진하고 있다. 제네시스 G80은 외장 색상 10개 중 유채색이 4개다. 무채색 판매가 전체의 90.2%를 차지하지만, 테즈먼 블루(6.1%), 한라산 그린(2.9%) 등 유채색이 마칼루 그레이(0.7%), 베르비에 화이트(0.5 %) 같은 무채색보다 인기를 끌기도 한다. G90도 한라산 그린(3.6%), 태즈먼 블루(3.0%), 카프리 블룩(2.7%) 등 유채색이 일부 무채색보다 많이 팔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