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에서 전기차 수요가 주춤하고 있지만 자동차 업계에서는 충전 시설 설치 경쟁이 여전히 치열하다. 새 제품을 빠르게 경험하려는 얼리 어답터는 전기차를 이미 대부분 보유한 상황이라, 충전 인프라가 부족하다고 생각해 전기차 구매를 주저하는 일반 소비자들을 겨냥한 것이다. 고품질 충전 서비스로 전기차 고객을 미리 확보해 또 다른 수익을 창출하려는 곳도 있다.
국내 완성차업계를 주도하는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초고속 충전 서비스 이피트(E-pit)를 내년까지 500기 구축하기로 했다. 이피트는 최대 출력 350㎾의 초고속 충전이 가능하다. 아이오닉 5 의 경우 배터리를 18분 만에 10%에서 80%로 충전할 수 있다. 아이오닉6, EV6, EV9 등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E-GMP) 기반으로 만든 다른 전기차도 비슷한 효율을 갖췄다. 이피트에서 충전할 경우 평균 충전 시간은 작년 기준 18분 30초다.
이런 이피트는 지난 3월 기준 전국 54곳에 286기가 설치돼 있는데, 현대차그룹은 내년까지 이를 두 배 가까이로 늘리기로 했다. 현대차그룹은 이피트를 빠르게 확장해 전기차도 불편하지 않다는 충전 경험을 널리 알리는 걸 목표로 삼았다.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충전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 ‘이피트 패스’(E-pit PASS)도 작년 말 도입했다. 충전소 운영 회사에 따라 회원과 비회원 간 충전 요금 차이가 큰 사례가 많아 비용을 아끼려고 충전 때 새로 회원 가입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피트 패스가 있으면 현대차그룹이 제휴를 맺은 충전소에서는 대부분 회원 요금 적용을 받는다. 현대차그룹의 전기차를 구매한 고객이라면 가입할 수 있다. 지난달 기준 이피트 패스로 한국전기차충전서비스, 한국전력 등 5개 제휴사의 충전기 7만2000기를 이용할 수 있다. 제휴사를 확대해 내년 말까진 국내 전체 충전기의 약 85%에 해당하는 충전기 26만 기를 이용할 수 있게 한다는 방침이다.
현대차그룹은 또 이피트와 별개로 전기차 충전소를 더 늘리고 있다. 내년까지 계열사인 한국전기차충전서비스와 현대엔지니어링을 통해 각각 초고속 충전기 3000기, 완속 충전기 2만 기를 추가 설치하겠다는 계획이다.
수입차 업체들도 충전 인프라 경쟁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BMW는 전기차 충전기 1000기를 새로 설치하는 ‘차징 넥스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올해까지 기존과 신규 충전기를 합해 2100기 이상의 충전기를 갖출 예정이다. 볼보는 올해 1000억원을 투자해 충전 서비스센터 6개를 새로 짓고, 급속과 완속 충전기를 보유한 서비스센터를 올해 말까지 40곳으로 늘린다.
포르셰는 내년까지 급속과 완속 충전기를 합해 250기 이상 설치한다는 방침이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일부 국가에만 적용했던 최대 350㎾의 초고속 충전 네트워크를 올해 국내에 처음 도입한다. 내년까지 25개의 고출력 충전 네트워크, 150개의 충전 시설을 설치하기로 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충전 인프라를 강화하기 위해선 급속 충전기를 더 늘리고 충전기의 49%가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에 집중된 현상을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숫자만 보면 충전기는 작년 말 기준 30만5309기로 전기차 1.78대당 1개 정도 된다. 해외 주요국에 비해 적지 않지만, 완속 충전기가 이 중 약 27만 대로 90% 안팎이라 소비자들은 아직 불편함을 느끼는 일이 잦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