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자동차 업계 최대 화두는 여성이다. 고금리·고물가 기조가 계속되며 전반적으로 자동차 구매를 줄이는 가운데, 그나마 판매가 급증할 것으로 기대됐던 전기차도 수요가 주춤한 상황이다. MZ세대의 자동차 구매 기피 현상이 갈수록 심화하자 소비 여력이 큰 5060세대에 기대던 자동차 업계가 최근에는 여성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
실제 여성 소비자는 자동차 구매를 상대적으로 덜 줄이는 추세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작년 수입차를 새로 등록한 남성은 10만7940명으로 2022년보다 6.2% 줄었지만, 여성은 5만5417명으로 3.8% 감소하는 데 그쳤다. 그 결과, 작년 수입차를 새로 등록한 차주의 33.9%가 여성이었다. 5년 전보다 2.4%포인트 증가해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 1분기(1~3월) 전체 승용차 등록자 중 여성 비율(30.1%)도 꾸준히 오르는 추세지만, 고가 차량이 많아 매출에 더욱 큰 영향을 주는 수입차 시장에서 여성의 구매력이 확인된 것이다.
이런 현상은 여성의 경제 활동 증가와 관련이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에 따르면, 작년 증가한 취업자 32만7000명 중 92.7%(30만3000명)가 여성이었다. 이 비율은 2021년 54.7%에서 2022년 53.4%로 소폭 감소했는데, 작년 92.7%로 급증했다. 특히 경제력과 소비력을 갖춘 30대·고학력·기혼 여성의 취업 증가가 이런 변화를 이끌었다는 것이 경총 측의 설명이다. 각종 사회 활동에 참여하면서도 아이를 돌보는 데 필요한 자동차를 구매하려는 ‘워킹맘’도 많다.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4월 18세 미만 자녀와 함께 사는 15~54세 기혼여성의 고용률은 60%로 전년 대비 2.2%포인트 올랐다. 자녀가 있어도 일을 계속하는 워킹맘이 늘었다는 뜻이다.
◇‘경차 선호’는 옛말, 큰 차 구매한다
최근 여성들의 자동차 구매는 SUV를 비롯한 큰 차량에 몰리고 있다. 과거엔 운전이 비교적 쉽고 디자인과 외장 색상이 세련됐다는 이유로 경차를 선호하는 현상이 컸다. 그러나 이제는 여러 경차가 단종되는 수순에 들어가고 있으며, 중형 이상 차량도 경차 못지않게 다양한 외장 색상과 감각적인 디자인을 기반으로 제작되는 경우가 많다.
가장 두드러지는 여성 선호 차량은 SUV다. 회사 출근과 자녀 양육 등 다양한 활동에 사용할 용도로 SUV를 찾는 것으로 추정된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올 1분기 여성이 가장 많이 등록한 차량은 SUV(62.9%)였다. 세단(23.5%)과 카니발 등 RV(레저용 차량·8.9%)가 뒤를 이었다. 차량 크기별로 보면 소형보다 중형급 차량을 선호하는 여성이 많다. 준중형(30.1%) 차량이 1위를 차지했고, 중형(25.2%)과 소형(15.7%) 자동차가 뒤를 이었다.
세단 인기가 시들하고 SUV가 그 자리를 차지하는 현상은 여성 운전자에게도 관찰됐다. 2019년 여성에게 가장 인기 많았던 차량 5위에 세단이 3개, 소형 SUV·경차가 1개씩 있었는데, 작년엔 5위 안에 세단이 2개, SUV가 3개 들었다.
◇“MZ대신 여성 잡아라”
최근 자동차 업계에선 가파른 수요 감소에 대응할 수 있는 마케팅 대상이 여성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MZ세대는 꾸준히 신차 소비를 줄이는 추세며, 신차 소비에서 큰 비율을 차지하는 5060세대에만 기대는 것이 장기적으로 긍정적이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다. 한 수입차 업체 관계자는 “MZ세대는 신차 구매를 줄일 뿐만 아니라 소비 패턴을 예측하기 어렵지만, 여성들은 마케팅 측면에서 예측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자동차 업계에선 여성들이 자동차 구매를 통해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패션 등 관심 분야의 체험을 유도하는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과거처럼 여성을 겨냥한 차량의 안전 편의 사항이나 화려한 디자인은 이미 많은 차량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만큼, 차량 외적인 마케팅으로 경쟁하는 것이다.
자동차 회사가 여성 차주들을 위한 커뮤니티를 만드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BMW코리아는 2022년 12월부터 ‘born BOLD(본볼드)’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는데, 가수 윤미래·배우 김혜숙 등이 참여하는 유튜브 광고를 내보내고, 유명 인사를 초청한 토크쇼를 열었다. 볼보는 2022년부터 여성들을 대상으로 ‘레이디스 살롱’을 열고 있다. 지난 3월 열린 행사에선 전문가를 초빙해 정원 문화에 대해 강의하는 ‘플로럴 가든 클래스’를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