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산업의 아이콘인 테슬라 CEO(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는 지난달 1분기(1~3월) 실적을 발표하며 “테슬라 주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 우리 자율 주행 서비스를 써보길 권한다”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 회사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테슬라는 최근 약 한 달간 전 세계 인력의 10% 이상인 1만4000명 안팎을 해고하는 것을 포함한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올 1분기 판매량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9% 가까이 줄면서 이익이 반 토막 난 여파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테슬라가 전기차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여러 대의 신차 개발, 신시장 개척, 원가 절감 방안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지난 한 달간 진행된 ‘테슬라식 구조조정’은 예상과 전혀 딴판으로 전개되고 있다.

테슬라는 전기차 생산이나 충전 인프라 구축, 새로운 공장 건설, 생산 기술 개발 등 전기차의 ‘몸’에 해당하는 하드웨어(HW) 관련 부분은 줄줄이 구조조정 대상에 올렸다. 대신 전기차의 ‘두뇌’에 해당하는 SW(소프트웨어)를 한층 강조하는 전략을 내세웠다. 머스크의 말처럼 AI(인공지능) 기술이 강조된 자율주행 서비스를 내세우는 게 대표적이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다른 글로벌 자동차 기업의 추격이 시작되자 테슬라는 ‘IT 기술이 있는 전기차 회사’가 아니라 ‘전기차를 만드는 IT 기업’이라는 걸 강조하려는 것”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그래픽=양인성

◇전기차 HW는 감속

현대차그룹과 GM(제너럴모터스), 벤츠 등은 올해부터 미국에서 전기차 충전소를 만들기 시작한다. 충전 불편을 줄여야 전기차 판매가 늘며 대중화가 앞당겨진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테슬라는 반대로 갔다. 최근 테슬라 충전소인 ‘수퍼차저’를 만드는 사업부에서 약 500명을 해고하며 사업을 대폭 축소하기로 했다. 주요 도시와 고속도로에 촘촘히 배치된 수퍼차저는 테슬라가 전기차 도입 초기에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로 꼽힌다. 많은 기업이 이 분야에 뛰어들자 추가 투자를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인도네시아 찾은 머스크 - 19일(현지 시각) 인도네시아 발리를 찾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왼쪽)가 공항에 마중 나온 루훗 판자이탄 인도네시아 해양·투자조정장관(오른쪽)과 함께 걷고 있다. 머스크 CEO는 자신이 설립한 스페이스X의 인공위성을 활용한 인터넷 서비스인 스타링크가 인도네시아에 도입되는 걸 계기로 발리를 찾았다. /AFP 연합뉴스

차세대 기가 캐스팅 기술 개발도 중단했다. 이 기술은 특수 알루미늄 대형 합금판에 주조 기계(기가 프레스)로 차체를 통째로 찍어내는 방식이다. 자동차 차체 바닥은 원래 철판 등 100개 넘는 부품을 이어 붙여 만드는데, 테슬라는 이 기술로 부품 수를 3개 안팎으로 줄였다. 한발 더 나아가 차체 바닥을 한 덩어리로 만들면서 수준을 한층 더 높이려다 관뒀다. 자동차 제조 역량을 오래 쌓지 않은 만큼 기술력을 더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는 반응이 나왔다.

인도 새 공장 건설도 미뤘다. 구조조정에 돌입하고 나서 머스크 CEO가 4월 말로 예고했던 인도 방문 일정을 갑자기 취소했다. 그는 모디 인도 총리를 만나 인도에 전기차 새 공장 건설을 발표하고 신흥 시작 개척을 본격화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원래 추진 중이던 2만5000달러 언저리의 중저가 전기차 외에는 새 전기차 출시 소식도 아직 없다.

◇AI에 더 집중한다는 테슬라

테슬라가 이런 구조조정을 하는 이유는 현대차그룹이나 폴크스바겐, BMW 등 전기차 추격자와 비교해 전기차 자체만으론 품질, 생산성 면에서 차별화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테슬라는 대신 구조조정 초점을 전기차 SW 경쟁력 강화에 맞추고 있다. 오는 8월 자율 주행 기술이 적용된 로보택시 서비스를 처음으로 공개한다. 머스크 CEO는 지난달 실적 발표 때 “자율 주행이 없는 차를 타는 것은 최신 플립 폰을 들고 말을 타는 것과 같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테슬라는 또 자율 주행용 AI를 개발하는 데 쓰는 반도체 수를 현재 3만5000개에서 연말 8만5000개까지 늘리기로 했다. AI 학습 속도를 더욱 높인다는 뜻이다. 현재 대표적인 AI 반도체인 엔비디아의 ‘H100′이 1개당 5000만원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연말까지 2조원 안팎 추가 투자하는 셈이다. 이를 통해 AI를 활용한 로봇 옵티머스 개발도 고도화해 내년 말 판매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만 불안 요소도 많다. GM의 자율 주행 기업 크루즈가 작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인명 사고를 내는 등 자율 주행 서비스에 대한 회의가 커지는 상황이다. 테슬라의 로보택시 등도 단점이 부각될 경우 테슬라에 대한 비관론이 더욱 짙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