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양진경·Midjourney

1984년 독일 폴크스바겐그룹은 글로벌 기업 중 처음으로 상하이자동차와 합작 회사를 만들어 중국 시장에 진출했다. 중국 기업에 자동차 기술을 가르쳐 줄 것과 관련 부품은 중국 안에서 조달해야 한다는 내용 등이 당시 중국 정부가 자국 시장을 열어주면서 내건 조건이었다. 뒤처진 중국 자동차 산업을 키우려는 조치였다.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중국 시장은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의 놀이터 같았다. GM(제너럴모터스), 도요타, 현대차·기아 등 글로벌 기업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중국 시장 공략에 나섰다.

40년 뒤인 지금은 상황이 반전됐다. 지난 20일(현지 시각) 독일 고급차 브랜드 아우디는 “중국 상하이자동차와 공동으로 차세대 고급 커넥티드 전기차 3종을 개발해 판매하겠다”며 “우리의 장점과 빠른 기술 혁신 속도를 갖춘 상하이차의 장점을 합하겠다”고 했다. ‘스마트 카’라고도 불리는 커넥티드 자동차는 IT가 집약된 대표적 미래차인데, 이 부문에서 중국이 앞섰다는 걸 자동차 종주국인 독일 회사가 인정한 셈이다.

아우디뿐만 아니다. 수십 년간 중국 기업에 내연차 제조 기법을 알려주면서 한발 앞선 품질로 중국 소비자들을 공략해 왔던 폴크스바겐·스텔란티스·도요타 등 다른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도 미래차 경쟁에서는 중국 회사와 손을 잡거나 중국차 기술을 벤치마킹하는 상황이다. 중국이 10여 년간 각종 보조금과 세제 혜택 등으로 전기차 산업을 키우고 글로벌 기업 인재를 적극적으로 스카우트하는 등 미래차 실력을 쌓은 결과라는 분석이다.

그래픽=양진경

◇中과 고급 미래차 만든다는 독일차

폴크스바겐은 중국 전기차 스타트업 샤오펑과 공동으로 배터리와 모터, 전력 시스템과 섀시(뼈대) 등으로 구성된 전기차의 토대 ‘플랫폼’을 개발하고 있다. 2026년 폴크스바겐 로고를 단 중형 전기 SUV 모델 2개를 중국에 출시하는 게 목표다. 자율주행 등 샤오펑의 소프트웨어(SW) 관련 기술을 반영할 계획이다. 폴크스바겐 측은 “(협력을 통해) 차 개발 시간을 30% 이상 단축하고, 비용 절감을 통해 가격 경쟁력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피아트·푸조 등 유럽 브랜드가 소속된 스텔란티스그룹은 중국 전기차 스타트업 립모터와 손을 잡았다. 스텔란티스는 립모터 지분 21%를 16억달러(약 2조1700억원)에 사들였고 합작 회사도 만들었다. 이 합작 회사가 만든 중국산 전기차를 유럽 등에 판매할 계획이다. 중국 전기차의 가성비를 인정했다는 뜻이다.

도요타는 중국 1위 전기차 기업인 BYD와 전기차·배터리 공동 개발을 위한 계약을 맺고, 2025년까지 중국에 전기 SUV 2종과 세단을 개발해 선보일 예정이다. 현대차그룹도 지난달 중국 빅테크 기업 바이두와 자율주행, 지능형 교통 시스템 등을 공동 개발하고 AI를 적용한 신제품과 미래 신사업을 발굴하기로 했다.

◇중국차와의 경쟁에 한계 느껴

글로벌 자동차 기업의 태도가 달라진 것은 중국차와 협력이 아닌 정면 대결을 벌일 경우 출혈 경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 각국 정부는 자국 산업 보호 차원에서 ‘싸면서 품질도 좋은’ 중국 전기차의 공습에 대비해 관세를 올리는 등 무역 장벽을 높이는 중이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이 같은 조치가 시간 벌기일 뿐 결국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하다는 반응이 많다. 가격 경쟁에선 승산이 없으니 아예 협업으로 중국차 장점을 흡수한 뒤 장기전에 대비하려는 기업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중국 내수 시장만 놓고 보면 현지화에 들이는 R&D(연구·개발)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중국 소비자들에게 ‘친중’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여기에다 중국이 개인 정보 보호 관련 규제 강도가 낮고 운전자 수가 절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데이터 축적 등에서 유리한 점 역시 자율주행 등 미래차 주요 기술력을 높이기에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