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왼쪽부터).

정주영·정몽구에서 정의선 회장으로 3대째 이어지는 R&D(연구·개발)에 대한 집요함이 현대차그룹을 글로벌 3위까지 오르게 한 경쟁력이란 평가가 많다. 정주영 선대 회장의 리더십은 ‘하면 된다’의 개척 정신이다. 국내외 어려움에도 포니 독자 개발을 고집, 1975년 양산에 성공했다. 1977년 당시 주한 미국 대사가 자동차 개발을 멈추기를 권유했지만,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자동차 산업을 포기할 수 없는 사명감이 있다”며 거부한 일화가 잘 알려져 있다.

정몽구 명예회장은 R&D를 최우선에 두고, 하이브리드차·수소차 등 기술 개발을 초창기부터 주도했다. 2000년 12월 그는 남양연구소 파워트레인(엔진·변속기) 연구소 건물을 찾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런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한테는 말이야. 빨간 카펫이라도 깔아줘야 하는 것 아냐?” 지시는 다음 날 바로 이행됐다. 파워트레인 건물 입구부터 복도가 모두 레드카펫으로 덮였다. 평소 자동차 심장인 엔진 개발을 연구하는 연구원들이 회사의 주역으로 대우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드러난 일화다. ‘품질 경영’을 강조하며 자동차 연구개발 단계에 큰 심혈을 기울인 덕분에 미국을 비롯한 해외 시장에도 성공적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27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부산모빌리티쇼 프레스데이에서 캐스퍼 일렉트릭을 살펴보고 있다. 캐스퍼 일렉트릭은 이날 부산에서 처음으로 공개됐다. /연합뉴스

아버지 정몽구 명예회장이 강조했던 ‘품질 경영’에 ‘소통’을 더한 것이 정의선 회장의 리더십이다. 그는 2019년 한 대담에서 “직원들과 아이디어를 나누려고 한다. 앞으로 우리는 스타트업처럼 더 자율적인 문화로 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연구소 내에선 소통에 기반한 아이디어가 축적되고 있다. 남양연구소에선 아이디어 경진 대회가 수시로 열리는데, 정의선 회장도 연구원들이 내는 아이디어를 살펴보며 내부 전산망에서 댓글을 다는 등 수시로 소통한다고 한다. 연구원들이 직접 개발하고 싶은 신기술을 제안하면 심사를 거쳐 별도 예산도 준다. 실패하더라도 문책은 없다. 오히려 기록을 세세하게 남겨 관련 부서가 참고하게 해 차기 기술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