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VIP들 상대로 ‘맞춤형 제네시스’ 소개 - 지난해 12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현대차그룹 글로벌디자인본부 CDO(최고 디자인 책임자)인 루크 동커볼케 사장이 지역 유명 사업가 등 VIP들을 대상으로 ‘원 오브 원(One of One)’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모습. ‘원 오브 원’은 단 한 명의 고객을 위해 맞춤형 제네시스를 만들어 주는 프로그램이다. 최근 1년 새 3억~4억원 안팎의 맞춤형 제네시스는 중동 왕족과 사업가 등에게 총 5대 팔렸다. /제네시스

“잘 알려지지 않은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a little-known luxury car brand).”

2021년 2월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제네시스 GV80을 타고 가다 사고가 났을 때, 현지 매체는 제네시스를 이렇게 불렀다. 경찰이 “차량 내부가 파손되지 않아 목숨을 건졌다”고 해 우즈의 차에 관심이 쏠렸을 때다. 우즈는 이례적으로 1년 뒤 정의선 회장에게 “고맙다”며 식사도 대접했다.

일본 도요타가 독일 벤츠·BMW 등이 장악한 미국에서 대결하려 1989년 럭셔리 브랜드 렉서스를 내놨듯, 현대차그룹도 같은 이유로 2015년 선보인 게 제네시스였다.

2018년 제네시스 미국 판매량은 1만312대로 렉서스(29만8310대)의 29분의 1이었다. 그러나 지금 제네시스는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고급차 브랜드다. 작년 미국 판매량은 6만9175대로, 5년 새 570.8% 늘었다. 미국 진출 30년이 넘은 렉서스, 혼다 아큐라와의 격차도 좁아지고 있다. 미국 ‘빅3′인 포드의 링컨(약 8만대)은 추월이 멀지 않았다.

현대차가 미국에 처음 진출하던 1986년, ‘포니 엑셀’ 광고를 하면서 내건 문구가 있다. “신차 한 대 값이면 우리 차 2대를 살 수 있습니다.” 미국 신차 한 대가 1만달러 안팎일 때 포니 엑셀 한 대당 수출 가격은 약 5000달러였다.

지금은 다르다. 제네시스의 올 초 미국 평균 판매 가격은 6만2526달러로, 렉서스나 독일 아우디 등과 대등하다. 평균 3만5000달러 안팎인 현대차·기아와도 다른 시장에서 그룹의 외연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 한쪽의 알려지지 않은 기업이었던 현대차·기아가 작년 연 730만대를 판매하며 2년 연속 글로벌 톱3에 오른 건 기적 같은 일로 평가받는다. 이제는 제네시스가 고급차 시장에서 또 하나의 기적에 도전하고 있다.

지난달 18일 현대차그룹 서울 강남사옥에서 만난 송민규 제네시스사업본부장(부사장)은 “제네시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현대차그룹의 스타트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대차·기아와 다른 것을 하자”는 도전 정신이 일종의 모토다.

그래픽=김현국

◇제네시스에 없는 것

2015년 현대차로부터 독립 브랜드로 분리해 출범한 제네시스 사업부의 전체 인력은 240명. 이 중 40%가 외부 경력직이다. 보석이나 패션 명품 업계는 물론 호텔, 게임, 화장품, 건축, 주류(酒類), 외식, 스포츠 등 다양하다. 전체 인원의 47%가 여성이기도 하다. 그래서 ‘공채’ 같은 순혈주의도 없다. 일하는 사람부터 질적으로 다르게 구성한 것이다.

제네시스에는 ‘판매 목표’도 없다. 연간 판매 목표나 신차 예상 판매량 등을 두지 않는다. 판매 목표를 두면 할인 등을 하면서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리게 되고, 결국 소비자 입장에서 고급차가 아니라 ‘비싼 현대차’가 된다는 것이다. 판매량을 늘려 빠르게 성장하는 것보다 고급 브랜드로서의 원숙함을 갖추는 게 우선 목표다.

정의선 회장의 엄명도 있었다. 제네시스 브랜드 도입을 주도한 그는 지금도 “돈 벌려고 제네시스를 만든 게 아니다”라고 한다. 작년 판매량 기준 약 20만대가 글로벌 시장에 나간 제네시스가 700만대 넘는 현대차·기아 제품 가치를 끌어올리는 게 진짜 임무란 뜻이다.

◇중동에 판 5억원짜리 제네시스

‘고급차 스타트업’에선 다양한 실험이 진행 중이다. 대표적인 게 제네시스 원 오브 원 프로그램이다. 현대차·기아는 연 수백만 대를 만들어 팔지만, 단 한 명의 고객을 위한 차를 수익성을 갖춰 만드는 시도를 해보자는 일종의 스토리텔링 전략으로 2022년 시작됐다.

지난해 5월 처음으로 34만달러(약 4억7000만원)짜리 제네시스 세단 G90 롱휠베이스를 개조한 첫 ‘원 오브 원’ 제품을 중동에 수출했다. 구입한 사람은 이 지역 한 왕족이었다. 사실상 이 차는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 역사에서 가장 비싸게 수출된 국산 승용차다. 만드는 데 7개월 걸렸다. 중동의 왕족, 개인 사업가 등에게 판매한 3억~4억원 안팎 맞춤형 제네시스는 이 차 포함해 총 5대. 송민규 본부장은 “고객에게 폐가 될까 봐 이런 사실도 1년 넘게 그룹 내부에서 소수만 공유할 정도로 극비리에 진행했다”고 말했다.

◇가장 좋은 기술부터 제네시스에

제네시스 성장 비결 중 또 하나는 고객 체감 품질이다. 제네시스 출범 이후 제네시스만 개발하는 별도 전담팀을 두고 있고, 현대차그룹이 개발한 가장 최신 기술은 제네시스부터 적용한다는 원칙 아래 차를 만든다. 그룹 관계자는 “실험실 테스트나 실제 주행 평가에서는 벤츠나 BMW, 렉서스를 앞서는 경우도 많다”면서 “차 실내의 향기까지 고려하는 기술로 고객들의 오감(五感)을 만족시키는 럭셔리 브랜드가 되는 게 목표”라고 했다.

최근 해외 주요 평가에서 상도 잇달아 받고 있다. G70이 2019년 미국에서 최고 권위의 자동차 상인 ‘북미 올해의 차’를 받았고, 2023년엔 GV70 전기차가 같은 상의 SUV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른 것 등이 대표적이다. 자동차 본고장 독일에서도 2022년 제네시스 GV60이 고급차 부문 ‘올해의 차’ 상을 받았다.

다만 렉서스, 아큐라와의 격차를 더 좁히고 제네시스 브랜드를 더 널리 알리기 위해 미국 이외의 해외 시장을 개척하는 것은 숙제다. 제네시스의 작년 글로벌 판매량 중 한국(12만6567대)과 미국 비중이 전체의 87%라서다. 제네시스는 현재 미국을 제외한 해외 시장 판매량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향후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선, 미국에서의 성장에 만족하지 않고 유럽과 중국 등 글로벌 시장에 더 적극적으로 진출해야 한단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