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은 올 초 R&D(연구·개발) 메카 남양연구소에서 핵심 인력 수백 명을 모아 특별팀을 꾸렸다. 세계적으로 전기차 전환 속도가 느려진 것에 맞춘 신차 개발을 시작했다. 이 신차는 순수 전기차도, 하이브리드도 아니다. EREV라 불리는 새로운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xtended Range Electric Vehicle)다.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뿐만 아니라 다양한 차종에 폭넓게 적용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일반 하이브리드는 엔진과 전기모터를 조합해 달리고 주행 중 배터리를 충전한다. 가솔린만으로 달리는 차보다 보통 연비가 30~40% 안팎 개선되는 효과를 낸다. 또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는 외부 충전이 가능하다는 게 차이점이다.

EREV도 하이브리드처럼 배터리와 모터, 엔진이 다 있다. 평소엔 순수 전기차처럼 충전된 배터리로 모터를 돌려 200~300km를 달리지만, 장거리를 갈 경우 배터리가 거의 다 떨어졌을 때 엔진으로 발전기를 돌려 배터리를 충전할 수 있다. 주행거리 100~150km를 더하는 것이다. 주행거리는 배터리 용량이나 엔진 크기에 따라 수백km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전기차 구매를 주저하게 하는 요인 중 하나인 불안한 주행거리와 충전소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이다.

그래픽=김하경

세계적인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속에서 세계 각국의 주요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이 속속 새로운 전략을 공개하고 있다. 내연차가 전기차로 100% 전환되는 시기가 예상보다 더 늦어질 수 있다고 보고 그 과정에 필요한 징검다리를 놓는 것이다. 특히 작년처럼 임시방편으로 단순히 하이브리드 제품을 늘리던 수준을 넘어섰다. ‘하이브리드 2.0′으로 부를 만큼 아예 업그레이드된 차세대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는 게 차이다.

◇차세대 내연차 기술 투자 늘린다

이달 초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는 프랑스 르노와 중국 지리차그룹이 50대50으로 합작해 만든 ‘홀스 파워트레인’에 7억4000만유로(약 1조1200억원)를 투자해 지분 10%를 확보했다. 이 회사는 유럽과 남미 등에서 연간 최대 자동차 300만대에 넣을 수 있는 엔진과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만든다. 르노와 지리는 전기차 전환이 이뤄질 때까지 내연기관 수요가 계속 이어질 거라 보고 이 회사를 설립했는데, 여기에 아람코까지 베팅한 것이다.

내연기관으로 달리는 세계 최초의 자동차를 만든 메르세데스 벤츠의 올라 칼레니우스 CEO는 지난달 “2027~2028년까지 내연차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투자를 늘렸다”고 밝혔다. 미국 스텔란티스는 중국 전기차 기업 립모터 지분 21%를 16억달러(약 2조2200억원)에 사들여, 이 회사 전기차를 유럽에서 생산·판매하기로 했다. 직접 개발 대신 기술을 사들인 셈이다.

하이브리드가 장기인 일본 기업들은 차세대 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지난 5월 도요타가 스바루·미쓰비시와 공동으로 차세대 소형 엔진을 개발한다고 발표했다. 이 엔진은 디젤·가솔린·수소를 모두 연료로 쓸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과 다르다. 배터리와 조합해 하이브리드 차량에도 쓸 수 있다. 혼다도 전기차에 쓸 수 있는 사륜구동 기술을 장착한 차세대 하이브리드 차량 개발에 착수했다.

◇ “과도기 4~5년 이상 간다”

엔진, 전기모터와 배터리 시스템 등 차량의 구동(驅動)과 관련된 핵심 시스템은 한번 개발하는 데 수천억 원이 들고, 이 투자금을 회수하려면 4~5년 이상 꾸준히 차를 판매해야 한다. 세계적 기업들이 새 구동 시스템을 개발한다는 것은 이 기간만큼 판매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는 뜻이다.

친환경차 전환을 강조해 온 세계 각국에서도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경우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전기차 보조금을 완전히 없애겠다”고 하고 있다. 지난달 유럽의회 선거에서도 우파 정당 입김이 강해지면서 2035년 내연차 판매 금지 등 친환경차 정책이 조정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