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폐막한 파리 올림픽에서 한국 양궁이 5종목 금메달을 모두 쓸어 담은 ‘신화’의 열풍이 계속되고 있다. 글로벌 ‘빅3′ 자동차 기업인 현대차그룹이 경영 전략 관점에서 한국 양궁의 경쟁력을 어떻게 키우고 유지해 왔는지가 연구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세계적인 배터리 양극재 기업인 에코프로가 18일 사내에 공유한 글에서 한국 양궁의 성공 배경을 분석하며 “다양한 시나리오를 미리 준비해야 리스크(위험 요인)에 대처할 수 있다”고 다룬 것이 대표적이다. 정의선 회장이 작년 말 ‘한국 양궁 60주년 행사’에서 “성적이 기대에 못 미쳐도 괜찮다. 보다 중요한 건 우리 모두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품격과 여유를 잃지 않는 진정한 1인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 동영상도 온라인에서 수백만 조회 수를 기록하는 등 기업과 한국 양궁의 협업이 일반 대중들에게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車 기술 노하우 곳곳
가장 대표적인 것은 현대차그룹의 R&D(연구·개발) 기술을 양궁에 대거 접목한 것이다. 양궁은 70m 거리에서 작은 과녁의 중앙을 맞혀야 하기 때문에 ‘정밀성’이 특히 중요한 종목이다. 훈련과 실전에서 작은 차이가 모여 큰 변화로 이어지는 이유다.
자동차에 사용되는 핵심 기술이 선수들의 장비에 대거 들어갔다. ‘야외 훈련용 다중 카메라’는 차선 변경, 주차 등에 쓰이는 서라운딩 기술이 들어가 선수들이 야외에서 자세를 실시간으로 점검하는 데 도움을 줬다.
올해 파리에서는 처음으로 현대차그룹이 개발한 ‘복사 냉각 모자’가 사용됐다. 직사광선은 반사시키고, 머리 주변의 열은 최대한 방출시키는 특수 소재를 써서, 일반 모자보다 최대 5도 안팎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여자 단체전에 나간 선수 중 2명이 이 모자를 썼다.
금메달 3개를 목에 건 김우진 선수를 계기로 주목받은 심박수를 측정하는 장비도 양궁 대표팀을 위해 현대차가 상명대와 산학연구를 통해 개발한 것이다. 도쿄 올림픽 때부터 적용 중이다. 평소 훈련 때부터 영상 카메라로 미세한 얼굴 혈류 변화를 분석해 심박수를 재, 평정심 유지에 이용하고 있다.
◇차 개발하듯 리스크 관리
리스크 관리 훈련도 현대차그룹이 양궁에 특별히 공을 들인 대목이다. 올림픽을 앞두고 지난 5월에는 실제 경기가 열린 파리 앵발리드 대회장과 똑같은 장소를 만들어 연습했다. 6월에는 센강 바람을 감안해 남한강변에서 실전 훈련도 가졌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자동차를 출시하기 전에도 독일 뉘르부르크링 서킷이나 미국 모하비 사막 등에서 실제보다 더 가혹한 테스트를 하는 것에서 착안했다”고 말했다.
또 양궁 국가대표 선수단이 파리 출국을 앞둔 지난달 13일, 정의선 회장은 진천 선수촌에 영어로 승리를 뜻하는 단어 ‘빅토리(victory)’가 새겨진 바나나 케이크를 보냈다. 젊은 층에 인기인 서울 북촌 맛집에서 특별히 주문 제작한 것이었다. 첫 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긴장했을 젊은 선수들을 감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더십도 재조명
양궁협회장이자 대기업 회장이지만 늘 선수들과 가까이 소통하는 리더십도 이번 올림픽에서 다시 한번 주목받았다. 정 회장은 올림픽뿐 아니라 평소 국내외에서 열리는 주요 대회에 수시로 현장을 찾고, 선수들과 자주 식사하거나 카카오톡 등으로 대화도 나누는 등 가까이 지낸다고 한다.
양궁협회 등에 따르면 지난 4일 파리의 에펠탑이 내려다보이는 한 식당에 양궁 국가대표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 협회 관계자 등 70명 안팎이 모였다.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 5개를 따낸 것을 축하하기 위한 것으로, 정의선 회장 지시로 마련한 자리였다. 식사 후 정 회장은 선수들은 물론, 코칭 스태프 등까지 한 명씩 이름을 부르며 앞으로 불러내 일대일로 기념 촬영을 했다고 한다. 깜짝 선물도 건넸다. 참석자들의 얼굴이 그려진 캐리커처를 액자에 담아 참석자 한 명 한 명에게 건넨 것이다. 대한양궁협회 관계자는 “정의선 회장이 1시간 가까이 올림픽을 준비하는 기간에 양지와 음지에서 애써 주신 모든 분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