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국내 완성차 업체들의 전기차 내수 판매량이 1만1280대로 집계됐다. 작년 8월(5949대)보다 90% 안팎, 지난 7월 대비 9% 각각 늘어난 수치다. 하지만 이는 7~8월 출시된 ‘신차 효과’로 인한 착시란 분석이 많다. 8월 판매량에는 지난달 1일 인천 청라의 한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벤츠 전기차 화재 사건 영향이 반영돼 있다. 지난 7월 출시된 기아 EV3와 8월 출시된 현대차 캐스퍼 일렉트릭 판매 실적을 걷어내면, 전기차 수요 감소의 충격이 작지 않다는 지적이다.

올해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으로 수요가 얼어붙는 상황에서 청라 화재로 인한 전기차 포비아(공포)가 확산한 것이 현실로 나타나면서 하반기 국내 자동차 시장 위축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2일 서울 서초구 매헌시민의 숲 공영주차장에서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전기차 화재 상황을 가정해 화재를 초기에 진압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뉴스1

◇신차 빼면 30% 감소

지난달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린 국산 전기차는 신차인 기아 EV3(4002대)와 캐스퍼 일렉트릭(1439대)이었다. 8월 팔린 전체 국산 전기차 중 두 차의 비율이 약 48%에 달했다. 신차 두 종을 제외하면, 전기차 판매량은 청라 지하주차장 화재 이전인 7월보다 약 30% 줄었다. 지난 8월 국내 완성차 5사의 내수 판매(10만 5504대)가 7월 대비 4% 줄어든 것과 대비된다.

신차를 제외한 나머지 전기차가 대부분이 부진했다. 지난 3월 부분변경 모델이 나온 현대차의 주력 전기차 아이오닉5의 경우 8월 판매량이 1222대로 한 달 전보다 31% 줄었다. 7월 508대 팔린 코나 전기차도 8월 판매량은 263대로 절반 수준에 그쳤다. 기아의 주력 전기차인 EV6도 판매량이 599대로 지난 7월(1344대)보다 55% 감소했다.

또 KG모빌리티의 전기차 토레스EVX의 경우 8월 판매량이 377대로 52% 줄었다. 매달 600~700대 안팎 팔렸던 차가 지난달엔 반 토막이 난 것이다.

국내 완성차업계 관계자는 “청라 화재 이전에 사전 계약된 물량과 렌터카 회사 등 법인차나 리스로 빠지는 물량 등이 8월 실적에 반영돼 신차 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면서 “9월부터 이런 신차 효과가 사라지면 전기차 수요 침체가 더 뚜렷해질 수 있어 걱정”이라고 했다. 시기적으로 3~4분기는 신차 출시가 많고 연식 변경을 앞두고 할인 판매도 늘어나는 ‘대목’인데, 8월 화재로 하반기 판매에 악영향을 줄 수 있어 업계의 우려가 더 크다.

◇업계 “하반기 한파 대비해야”

올해 1~8월 누적 판매만 봐도 국내 전기차 시장은 캐즘 영향을 적지 않게 받고 있다. 시장을 주도하는 현대차의 경우 1~8월 전기차 판매량이 약 2만6000대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45% 줄었다. 이 때문에 국산·수입차업계에서는 전기차 구매 혜택을 더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는 곳이 늘고 있다.

예를 들어 현대차는 지난달 현대캐피탈과 손잡고, 국내 최초로 리스 때 전기차 배터리의 가치만큼 비용을 할인해주는 상품을 내놨다. 캐스퍼 일렉트릭을 10년 뒤 폐차할 때 배터리를 회수하는 것을 감안한 상품으로 5년 리스 기준 월 27만3000원에 차를 탈 수 있게 한 것이다. 동급 가솔린차 리스비보다 월 1만4000원가량 저렴하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이달 초 정부가 내놓을 예정인 전기차 안전 관리 대책에도 주목하고 있다. 청라 화재 이후 한 달 넘게 종합 대책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전기차를 둘러싼 시민의 불안이 커지고 있어, 이를 빠르게 불식시켜야 시장이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업계 한 관계자는 “청라 화재 이후 정부 부처와 지자체가 경쟁하듯 관련 정책을 쏟아내면서 전기차를 둘러싼 혼선이 더욱 커졌는데,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