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전력공사가 체코 테믈린에서 운영 중인 1000㎿(메가와트)급 원전 2기.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세계 각국이 급증하는 전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이른바 ‘탈탈원전’에 나서는 가운데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지난 7월 체코 두코바니 5·6호기 신규 원전 우선 협상 대상자에 선정된 것을 계기로 K원전의 경쟁력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2009년 UAE(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 이후 15년 만의 해외 원전 수출로, 규모 면에서도 종전 최고 기록(20조원)을 넘어선 약 24조원에 달한다. 게다가 유럽 시장인 체코에서 원전 강호 프랑스를 이기고 수주를 따냈다는 점에서 K원전이 유럽에 진출하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수원은 이를 계기로 원전 건설에 속도를 내는 유럽을 비롯한 해외 진출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계획이다.

◇결실 맺은 50년 원전 기술력

체코 정부는 신규 원전 우선 협상 대상자를 발표하며 “모든 기준에서 한국이 제시한 조건이 우수했다”고 했다. 특히 정해진 시간과 예산 안에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온 타임 온 버짓(On Time On Budget)’이 유럽 시장을 사로잡았다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은 2009년 UAE 바라카 원전 수주 경쟁 때도 프랑스보다 낮은 건설 단가와 짧은 공사 기간을 앞세워 이겼고, 이번 체코 원전 수주에도 이런 장점이 큰 역할을 했다.

올 들어 UAE 바라카 원전 4호기가 모두 상업 운전에 성공, K원전의 장점이 구체적인 성과로 드러난 것도 체코 원전 수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1978년 첫 원전 고리 1호기를 가동한 한국은 프랑스·미국 등 기존 원전 강호와 비교하면 출발은 늦었지만, 지난 50여 년 동안 국내외에서 끊임없이 원전을 짓고 운영하며 노하우를 쌓아왔다.

◇현지 밀착형 상생 활동

체코 원전 수주 성공의 배경 중 하나로 오랜 기간에 걸친 한수원의 현지 상생 활동도 거론된다. 대학생과 한수원 직원으로 구성된 ‘한수원 글로벌 봉사단’은 2013년 베트남을 시작으로 세계 곳곳의 복지 시설과 학교 등을 찾아 봉사 활동과 문화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체코에선 2017년부터 신규 원전 예정 지역을 대상으로 봉사 활동을 펼쳤다. 코로나로 해외 비행길이 막혔을 때는 일회용 마스크와 소독제를 구해 현지에 배송했다. 한수원 관계자는 “체코 주민들이 일회용 마스크가 없어 천 마스크를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런 결정을 내렸다”며 “최근에는 태권도 시범, 케이팝(K-POP) 댄스 공연 등을 열며 체코 현지 청소년들과 교류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또 체코의 ‘국민 스포츠’라 불리는 아이스하키에 대한 지원도 현지 주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수원은 지난 6월엔 체코 원전 건설 예정 인근 지역인 트레비치 아이스하키팀 후원 기간을 연장했다. 신규 원전 우선 협상 대상자가 발표되기 한 달 전이었지만 2018년부터 이어온 후원을 계속하기로 한 것이었다.

◇K원전 수출 청신호 켜지나

특히 내년 원자력 관련 예산이 대폭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K원전의 해외 수출에도 청신호가 켜질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달 정부가 발표한 내년 예산안에 따르면,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 등 차세대 원전 R&D(연구·개발)에 대한 예산이 올해 1630억원에서 내년 2050억원으로 늘어난다.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을 국정 과제로 삼은 만큼,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원전을 주력 산업으로 부흥시키기 위한 차원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예산이 대폭 확대됨에 따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국내 원자력 산업, 나아가 원전 수출 경쟁력도 한층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한수원은 내년 3월 두코바니 5·6호기 신규 원전과 관련해 체코와 최종 계약을 맺는다. 협상 결과에 따라 추가 2기를 수주, 최대 원전 4기를 건설할 가능성도 크다. 황주호 한수원 사장은 “원전 생태계는 물론 우리나라 전체 산업 전반에 새로운 유럽의 바람이 불어올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할 것”이라며 “이번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대형 원전뿐 아니라 SMR(소형모듈원전) 등 신규 원전 수요가 있는 전 세계에서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