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경기도 의왕의 현대모비스 전동화연구소. 현대모비스의 신기술 실증 차량 ‘모비온’에 탄 직원이 운전석 앞에 설치된 모니터의 ‘크랩 주행’ 버튼을 누르자, 차량의 바퀴 4개가 90도로 회전했다. 이어 차량이 멈춰 있던 자리에서 그대로 좌우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직원이 ‘제로 턴’ 버튼을 누르자, 이번에는 차량이 제자리에서 360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 차량의 바퀴 4개에는 제각각 구동 모터가 적용돼 있다. 이를 통해 각 바퀴가 90도 이상 회전하는 것이 가능하고, 이를 조작할 수 있는 조향·제동·서스펜션 기능도 차량에 함께 탑재했다. 모비스가 내세우고 있는 차세대 차량의 대표 기술 ‘e코너 시스템’이다.
현대모비스는 이날 각종 신기술을 선보이는 ‘R&D 테크데이’ 행사를 개최하고 언론에 공개했다. 이 행사는 모비스가 2년에 한번씩 연구·개발(R&D) 성과를 모아 내부 직원과 고객사에게 선보이는 내부 행사였지만, 올해는 이를 처음으로 외부에 공개한 것이다. 이날 테크데이에서 모비스는 전동화·전장·안전·램프 등 다양한 분야의 신기술 65종을 공개했다. 이 중 15개 기술은 모비스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기술이다.
◇65종 신기술 공개… “이미 양산 가능한 단계까지 구현”
이날 공개된 기술 65종 중에서는 전장 부품이 21개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주로 자율주행과 첨단 센서류, 차세대 디스플레이 등의 신기술들이 많았다. 주요 기술·제품으로는 최대 탐지 거리를 350m로 늘린 전방 레이더, 악천후 기상 상황에도 인식 기능을 개선한 적외선 카메라, 차량 상태 유지에 특화된 생성형 인공지능(AI), 시야각을 넓힌 3D 디스플레이 등이 소개됐다. 모비스 관계자는 “대부분의 기술이 이미 양산이 가능한 단계로, 고객사 요청만 있으면 언제든 차량에 반영이 가능하다”고 했다.
주차 지원 시스템도 돋보였다. 운전자가 주차장에 진입한 후 이 시스템을 가동시키고 주차를 하면, 시스템이 주차 과정에서 차량의 움직임을 데이터로 습득한다. 이후 이 운전자가 같은 주차장의 동일한 위치에서 시스템을 다시 작동시키면, 운전자가 별도의 조작을 하지 않아도 주차 지원 시스템이 당시 차량의 움직임을 그대로 재현해 알아서 주차를 하는 식이다.
안전·섀시 분야에서는 에어백과 램프, 제동과 조향 등 다양한 분야의 신기술을 선보였다. 조수석이나 뒷자리 등 모든 자리에 부착 가능한 에어백으로 충돌 사고가 발생했을 시 탑승자의 머리가 다치는 것을 최대한 방지하거나, 고화질의 LED(발광다이오드)를 적용한 헤드램프로 운전 관련 상황을 보행자나 주위 차량에게 그림으로 표시해주는 기술 등이 눈에 띄었다. 모비스는 이외 도심 운송에 특화된 소형트럭용 차세대 구동시스템, 고가 희소 금속인 니켈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인덕터(변압기), 초고속 배터리 충전 냉각 기술 등도 선보였다.
◇개별 부품 넘어 주요 시스템까지 개발·양산
모비스는 이날 구동시스템과 배터리시스템, 전력변환시스템이라는 전동화 핵심 부품 3대 개발 전략도 함께 발표했다. 모비스는 2011년부터 하이브리드 차량용 배터리, 모터와 인버터 등 전기차 주요 부품 개발에 성공해 왔는데, 앞으로는 개별 부품들을 통합한 시스템 개발에 주력하겠다는 것이다. 이영국 현대모비스 전동화 엔지니어링실장은 “전기차 시스템은 물론, 더 나아가서는 항공교통(AAM)과 로봇 관련 시스템도 개발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모터 등 구동 시스템 관련해서는 모터, 감속기, 인버터를 통합한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전체적인 시스템을 소형화하고 대량 생산이 가능하도록 해 가격 경쟁력 확보하겠다는 목표다.
최근 잇따라 일어난 전기차 화재로 인해 이슈가 되고 있는 배터리 시스템 관련해서는 배터리 내부에서 발생한 화재가 차량 전체로 번지지 않게 하는 기술을 중점적으로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추후에는 적극적으로 화재를 방지하는 내열성·내화성 시스템을 개발하겠다는 게 현대모비스 측 설명이다.
배터리의 전기를 동력으로 변환하는 전력변환시스템에 있어서는 충전기와 변압기, 각종 부품을 하나로 일체화한 차세대 통합충전제어장치(ICCU) 시스템을 개발·생산 중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더해 배터리에 저장된 에너지를 다시 차 밖으로 내보내는 기능도 구현하고 있다. 전기차의 전력으로 외부 조명을 밝히거나, 발전소 등에 남는 전기를 다시 판매하는 수준까지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이 실장은 “전기차 캐즘이라는 대외환경 변화에도 불구하고, 의왕연구소에서 수백여명의 연구진들이 R&D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며 “언젠가 캐즘을 극복하고 다시 전기차가 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업계 최고 수준인 현대모비스의 전동화부품 경쟁력을 내세워 글로벌 고객사들에게 적극적으로 영업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