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의 전기차 아이오닉 5가 미국 최대 자율주행 기업 웨이모의 소프트웨어를 탑재, 웨이모의 로보택시(무인 자율 주행 택시)로 투입된다. 웨이모는 구글 자회사로, 미국에서 유료 로보택시를 운영하는 유일한 회사다. 미국 전기차 판매량 2위이기도 한 현대차그룹은 자율주행 기술에 투자를 계속해 왔는데, 웨이모와 손을 잡고 미국에서 집중적인 테스트를 하면서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겠다는 것이다.

현대차의 전기차 아이오닉 5가 미국 웨이모의 로보택시로 출시된 가상의 모습. 아이오닉 5에 투입되는 웨이모의 6세대 완전 자율주행 기술은 기존 세대보다 센서들이 중복 감지하는 영역을 줄여 센서 수를 줄이고 효율성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현대차

현대차는 웨이모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고 4일 밝혔다.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에서 생산된 아이오닉 5에 웨이모의 6세대 완전 자율주행 기술을 적용하게 된다. 내년 말부터 초기 도로 주행 테스트를 진행한 뒤, 수년 내에 실제 웨이모의 로보택시 서비스로 투입하는 게 목표다. 협약식에는 현대차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 호세 무뇨스 사장, 현대차그룹 AVP본부 송창현 사장, 웨이모 공동 최고경영자(CEO) 테케드라 마와카나 등이 참석했다.

그래픽=송윤혜

이번 파트너십 체결은 중국 자율주행 기술 성장에 위기를 느낀 미국과 한국 기업 모두의 필요성 때문이란 분석이다. 웨이모는 2020년부터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로보택시를 운영하기 시작해, 사람이 타지 않은 주행 기준으로 로보택시 누적 운행 거리가 4년 동안 3000만km 정도다. 반면 중국 기업 바이두는 그보다 늦은 2021년 로보택시 서비스(아폴로 고)를 시작했음에도 누적 운행 거리가 1억km에 달한다. 자율주행 누적 거리 공개를 하지 않는 현대차는 국내 자율주행 규제 등으로 대부분 연구단지 내부에서 테스트를 집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픽=송윤혜

◇자율주행·전기차 기술 시너지 낼 것

현대차는 지난 8월 ‘인베스터 데이’에서 자사의 자동차 차체를 빌려주고 거기에 자율주행 선두 기업의 기술을 투입하는 ‘파운드리’(위탁 생산)를 늘리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레벨4′ 이상의 자율주행 구현에 필수적인 하드웨어를 개발하고, 자율주행 차량 플랫폼을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개발 업체에 공급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번에 발표한 웨이모와의 협업이 그 시작인 셈이다.

현대차는 앞서 미국에서 자율차 합작법인 ‘모셔널’을 만들고, 네이버 출신들이 만든 자율차 기업 ‘포티투닷’을 인수하며 자율차 분야에 투자를 계속해 왔다. 그러나 모셔널이 지난 5월 자율주행 기술 상용화를 늦추는 등 가시적인 성과는 내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에서 웨이모와 협력을 통해 돌파구를 찾으려는 것이다.

웨이모로선 현대차의 전기차 제조 기술과 수년간 자율주행 기업에 투자하며 관련 기술을 개발해 온 경험을 높이 산 것으로 보인다. 웨이모는 작년부터 크라이슬러 내연차 대신 재규어 전기차를 로보택시 차량으로 이용하고 있다. 전기차와 자율주행 기술의 시너지를 기대하는 것이다.

무뇨스 사장은 “양 사는 이번 파트너십을 시작으로 추가적인 협업 기회를 적극적으로 모색할 것”이라고 했다. 마와카나 웨이모 CEO는 “지속 가능성과 강력한 전기차 로드맵에 중점을 두고 있는 현대차는 더 많은 이용자에게 완전한 자율주행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는 웨이모의 훌륭한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나가는 中 자율주행

최근 중국 자율주행차들의 성장은 괄목할 수준이다. 미국·유럽 등 자율주행 기업들이 최근 자율주행차 인명 사고를 비롯한 악재로 주춤하는 사이, 중국 기업들은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빠르게 질주하는 것이다.

중국 바이두는 베이징을 비롯한 도시 10곳에서 로보택시를 유료로 운영하고 있고, 올해 누적 운행 거리 약 1억km를 달성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 6월에도 BYD 등 업체 9곳이 자율주행 3·4단계를 도로에서 시험하도록 승인하는 등 규제를 빠르게 풀고 있다.

이 같은 환경 덕분에 중국은 운전자 없이 달리는 로보택시의 격전지가 되고 있다. 올 들어 테슬라도 자사의 완전 자율주행(FSD·Full Self-Driving) 시스템을 중국에서 시험하겠다고 밝혔다. 자율주행 기술의 안정성을 실제 환경에서 시험하고 데이터를 쌓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평가받기 때문이다. 중국은 로보택시를 좁은 시범 테스트 구역에서 운행하는 대부분 국가와 달리 일반 시민 수천만 명이 있는 도시 전체에 내보내, 매달 1000만km 이상의 운행 데이터를 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