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경기도 의왕에 있는 현대모비스 전동화연구소. 현대모비스의 신기술 실증 차량 ‘모비온’에 탄 직원이 운전석 앞에 설치된 모니터의 ‘크랩(crab·게) 주행’ 버튼을 누르자, 차량 바퀴 4개가 90도로 회전했다. 차량이 멈춰 있던 자리에서 그대로 왼쪽 또는 오른쪽으로 이동이 가능했다. 초보 운전자들이 어려워하는 평행 주차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능인 것이다. 이어 직원이 ‘제로 턴(zero turn)’ 버튼을 누르자, 이번엔 좁은 공간에서도 쉽게 방향 전환을 할 수 있게 차량이 제자리에서 360도로 돌기 시작했다.
이 차량의 바퀴 4개에는 각각 별도의 구동 모터가 적용돼 있다. 이를 통해 각 바퀴가 90도까지 회전하는 것이 가능하고, 이를 조작할 수 있는 방향 조절 장치와 브레이크 등의 부품도 함께 탑재했다. 모비스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차세대 전기차 구동 기술 ‘e코너 시스템’이다. 현대모비스 관계자는 “초보 운전자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모비스는 이날 e코너 시스템을 비롯, 각종 연구·개발(R&D) 성과를 모아 선보이는 ‘R&D 테크데이’ 행사를 개최하고 언론에 공개했다. R&D 테크데이는 원래 모비스가 2년에 한 번씩 각종 신기술을 모아 고객사에 선보이는 내부 행사인데 이를 처음으로 외부에 공개한 것이다. 현대모비스는 2019년부터 R&D 비용을 매년 15% 이상 늘려 왔고, 올해에는 역대 최대 규모인 1조7000억원을 R&D에 투자했다.
이날 테크데이에서는 모비스가 개발한 전동화·전장·안전·램프 등 다양한 분야의 신기술 65개가 공개됐다. 이 중 15개는 모비스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기술이다. 기존 부품 대비 배터리 충전 속도를 2배로 끌어올리는 통합 충전 제어장치(ICCU), 희소 금속 니켈을 다른 금속 분말로 대체해 단가를 낮춘 변압기 등이 주요 성과로 소개됐다. 최대 탐지 거리를 기존 150~200m에서 350m로 늘린 전방 레이더도 있었다. 이 레이더가 자율 주행 차량에 접목되면 차량이 도로 상황을 보다 빠르게 인식해 대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운전자나 보행자의 안전을 위한 신기술도 눈에 띄었다. 뒷좌석 승객의 사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운전석이나 조수석 뒤편에 부착할 수 있도록 개발된 에어백, 충돌을 경고하는 기호 형태의 조명을 전조등으로 쏘아 보내는 ‘커뮤니케이션 헤드램프’, 운전자가 착용한 장비를 통해 운전자 뇌파를 실시간으로 측정하고 부주의나 졸음 운전이 관측되면 경고 알림을 보내는 ‘엠브레인’ 장치 등이었다.
운전자의 편의를 위한 기술도 다양하게 개발됐다. 운전자의 주차 코스를 자체적으로 습득해 주차를 돕는 ‘주차 지원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운전자가 이 시스템을 가동하고 주차를 하면 주차 과정에서 차량 움직임이 데이터로 저장된다. 이후 이 운전자가 같은 주차장의 동일한 위치에서 시스템을 작동하면, 운전자가 따로 운전을 하지 않아도 주차 지원 시스템이 이 데이터를 그대로 재현해 주차하는 식이다.
모비스는 이날 구동 시스템·배터리 시스템·전력 변환 시스템 등 3대 핵심 시스템 개발 전략도 발표했다. 모비스는 2011년부터 하이브리드 차량용 배터리 시스템, 모터와 인버터 등 전기차 주요 부품을 자체 개발해 왔는데, 앞으로는 개별 부품들을 통합한 시스템 개발에 주력하겠다는 것이다. 회사 관계자는 “전기차 시스템은 물론, 더 나아가서는 미래 항공 교통(AAM)과 로봇 관련 시스템도 개발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