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능 대결에서 가격 경쟁으로.’

14일 언론에 먼저 공개돼 20일까지 열리는 올해 파리 모터쇼가 최근 달라진 전기차 시장의 경쟁을 극명하게 보여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000만~2000만원대 가격을 무기 삼아 해외 진출에 속도를 내는 중국 업체뿐 아니라 전통의 유럽 자동차 기업도 경쟁적으로 2000만원대 전기차를 파리 모터쇼에 내놓고 있다.

1898년 시작돼 올해 90회를 맞는 파리 모터쇼는 디트로이트·제네바·프랑크푸르트 모터쇼와 함께 세계 4대 자동차 박람회로 꼽힌다. 올해의 핵심 관전 포인트로 중국과 유럽 전기차 업체의 가격 경쟁이 꼽힌다. EU(유럽연합)가 지난 4일 중국산 전기차에 대해 최고 45.3%의 관세를 부과했지만, 중국 업체들은 유럽 곳곳에 공장을 지으며 현지 진출을 멈추지 않고 있다. 유럽 현지 자동차 브랜드가 전기차 전환에서 다소 뒤처지는 약점을 공략해 시장점유율을 확대하려는 포석이다. 이런 중국 업체의 공세에 맞서 르노와 시트로엥을 비롯한 유럽 업체들은 이번 파리 모터쇼에서 2000만원대 안팎의 전기차를 주력 모델로 공개하기로 했다.

◇유럽도 2000만원대 전기차 바람

테슬라가 전기차 시장을 이끌던 2010년대엔 주행거리 같은 전기차 성능이 핵심 경쟁 요소였다. 2012년 출시된 테슬라의 ‘모델 S’는 10만달러라는 가격에도 미국에서 출시 6개월 만에 2600여 대 팔리며 전기차 대중화의 기틀을 놨다. 한 번 충전해 달리는 거리를 기존 100㎞대에서 300㎞대로 늘린 결과다.

그러나 최근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이 심화하면서 ‘더 저렴한 가격’으로 경쟁의 무게추가 옮겨진 분위기다. 현대차·기아가 올해 캐스퍼 일렉트릭, EV3 같은 보급형 전기차를 내놓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래픽=김성규

그동안 유럽 자동차 업체들은 높은 인건비와 기술력 부진으로 전기차 시장에서 가격 경쟁을 할 처지가 못 됐다. 그러나 EU가 중국산 전기차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게다가 유럽 여러 나라가 전기차 보조금을 줄이면서 전기차 판매가를 낮출 필요성이 더 커졌다.

프랑스 르노는 파리 모터쇼에서 2000만원대 가격에 책정될 전기차 ‘트윙고’의 시제품을 전시한다. 2026년 출시 예정이다. 스텔란티스 그룹 산하 시트로엥은 2000만원 안팎 내연차 ‘C3 에어크로스’를 처음 공개한다. 3000만원대 전기차 ‘e-C3′도 전시할 예정이다.

중국 전기차 업체도 대거 참석한다. 리프모터는 이번 파리 모터쇼를 통해 유럽 진출을 본격화한다. 리프모터는 스텔란티스와 합작 회사에서 생산한 1000만원 안팎 전기차 ‘T03′ 등을 지난달부터 유럽에서 판매 중이다. 이번 파리 모터쇼에선 첫 준중형 전기차 ‘B10′을 처음 공개할 예정이다. 내년 유럽에서 2000만원대 출시될 것으로 알려진 차량이다.

중국 1위 전기차 업체 BYD는 3000만원대 중형 전기 SUV ‘Sea Lion 07′ 등 유럽을 겨냥한 전기차를 다수 전시한다. 또 BYD는 내년 유럽에서 1000만원대 전기차 ‘시걸’을 출시한다. 폴크스바겐과 손잡은 중국 샤오펑은 올해 파리 모터쇼에서 유럽 시장을 위해 만들어진 차세대 차량용 운영 체제를 선보인다.

◇관세 장벽에도 굴하지 않는 중국

올해 파리모터쇼엔 완성차 업체와 부품 제조사 등을 포함해 180개 안팎 기업이 참여한다. 10년 전(270여 개)의 3분의 2 수준이다. 도요타, 혼다, 닛산 등 일본 브랜드가 대거 불참하고, 메르세데스-벤츠를 비롯한 일부 독일 기업도 불참한다. 한국에선 보급형 전기차 EV3를 앞세운 기아만 6년 만에 파리 모터쇼에 참여한다. 유럽 시장이 코로나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부진한 데다가, 이미 많은 업체가 모터쇼 대신 세계 최대 IT 박람회 CES로 발을 돌린 결과다. 제네바 모터쇼도 앞으로 행사를 중단하기로 했다.

글로벌 자동차 업체가 대거 불참하면서 유럽과 중국 간 전기차 가격 경쟁이 더욱 두드러지게 됐다. 블룸버그 통신은 “올해 파리 모터쇼에서 유럽 자동차 브랜드가 저가 전기차를 통해 침체한 판매를 반전시키고자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