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현지 시각) 인도 뭄바이 인도증권거래소(NSE)에서 정의선(왼쪽에서 둘째) 현대차그룹 회장이 현대차 인도법인(HMI)의 증시 상장을 알리는 의미로 종을 치고 있다. 왼쪽부터 현대차 장재훈 사장, 정 회장, 인도증권거래소 아쉬쉬 차우한 최고운영자(CEO), 얀 메츠거 씨티그룹 기업금융증권 아태지역 총괄 책임자. 이날 행사에는 현대차그룹과 인도증권거래소 관계자 등 250여 명이 참석했다. /현대차그룹

현대차 인도법인 HMI(Hyundai Motors India)가 현지 진출 28년 만에 인도 증시에 상장했다. 인도 증시 사상 최대 규모 IPO(기업공개)로 모회사인 현대차는 신주발행 없이 전체(100%) 지분 중 17.5%를 매각해 4조5000억원을 조달한다. 현대차는 인도를 러시아와 중국을 대체하는 주력 시장으로 공략하는 동시에 유럽과 동남아 등으로 수출하는 글로벌 제조 기지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22일(현지 시각) 뭄바이 인도증권거래소(NSE)에서 열린 상장식에서 “인도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시장”이라며 “미래 기술의 선구자가 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인도에서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상장을 통해 급성장하는 인도 자동차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고, 전기차와 소프트웨어 같은 연구·개발(R&D) 투자도 확대할 예정이다. 정 회장은 전날인 21일엔 나렌드리 모디 인도 총리를 만나 “인도에서 전기차 모델을 계속해서 출시하고, 충전망 설립 등 전기차 생태계 구축에 기여할 수 있게 인도 정부와 협력하겠다”고 했다.

그래픽=김하경

◇인도 증시 사상 최대 규모 IPO

현대차 인도법인 기업공개는 세계 최대 자산 운용사인 블랙록을 비롯해 피델리티, 싱가포르 정부 등 외국인과 기관 투자자들이 대거 몰리며 희망했던 범위에서 가장 높은 주당 1960루피(약 3만2000원)로 공모가가 결정됐다. 이번 상장은 외국계 완성차 기업으로는 마루티 스즈키(2003) 이후 21년 만이며, IPO 규모는 2022년 인도보험공사(2101억루피), 2021년 온라인 결제 업체 Paytm(1830억루피)를 넘어서는 인도 증시 사상 최대 규모다. 장재훈 현대차 사장은 이날 “빠르게 성장하는 인도 자본시장을 활용해 인도 법인이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1996년 법인 설립과 함께 인도 시장에 진출했다. 2억6000만달러(약 3600억원)를 들여 첸나이에 공장을 건설하기 시작했고, 1998년부터 경차 아토스를 모델로 한 전략 차종 상트로를 내놓으며 현지 소비자를 공략했다. 첫해 2%였던 점유율은 2년 만인 2000년 14%대로 올라섰다.

2008년 2공장을 완공한 데 이어 2015년엔 도심형 SUV 크레타를 내놓으며 인도 자동차 시장에 SUV 붐을 일으켰다. 포브스인디아에 따르면, 지난달 인도에서 크레타는 전년 동기 대비 25% 늘어난 1만5902대가 팔려 SUV 부문 1위, 전체 자동차 중 톱3에 올랐다. 현대차는 2019년 인도 시장 첫 전기차인 코나 EV에 이어 지난해 아이오닉5를 출시하며 인도 전기차 시장도 이끌고 있다.

21일(현지 시각) 인도 델리 총리 관저에서 나렌드라 모디(오른쪽) 인도 총리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악수하는 모습. /현대차그룹

◇IPO 발판으로 인도 시장 공략 강화

업계에서는 현대차가 대규모 자금 조달을 통해 인도 1위 업체인 마루티 스즈키와의 격차를 좁힐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현대차는 상장으로 조달한 자금을 전기차와 수소연료전지, 소프트웨어 등 하이테크 기술 개발과 인도 내 인재 교육 등에 사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특히 젊은 층이 선호하는 소형차 위주로 투자가 확대될 전망이다.

현대차는 인도 내수 시장 공략은 물론, 인도를 세계 90여 국으로 수출하는 허브로도 활용할 방침이다. 지난해 현대차는 인도에서 75만대를 생산해 이 가운데 20%인 15만대를 아프리카, 유럽, 동남아 등으로 수출했다. 생산과 수출 모두 국내에 이어 2위다. GM으로부터 인수한 3공장이 내년부터 가동을 시작하면 생산 규모는 해마다 늘어나며, 2028년 110만대 수준으로 확대된다.

그래픽=김하경

◇빠르게 성장하는 인도 시장

올 1~9월 기준 현대차의 시장점유율은 14.2%로 마루티 스즈키(40.9%)에 이어 2위다. 기아를 더하면 현대차그룹의 점유율은 20%에 달한다. 인도에선 지난해 총 413만대의 자동차가 판매돼 중국(2193만대), 미국(1561만대)에 이어 세계에서 셋째로 큰 시장이다. 2020년 244만대에서 불과 3년 사이에 169만대(69.2%)가 늘었다. 인도 정부의 제조업 육성 정책인 ‘메이크 인 인디아’ 정책을 발판으로 타타, 마힌드라&마힌드라 등 현지 업체들이 추격하는 가운데 도요타, 포드 등 글로벌 업체들도 기회를 엿보고 있다.

이항구 자동차융합연구원장은 “인도 시장을 두고 글로벌 업체들의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이번 상장을 통해 현대차는 현금 흐름 개선과 함께 인도 공장 고도화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며 “인도에서 현대차의 브랜드 가치를 올리는 효과도 기대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