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이자 세계 3위 자동차 기업인 현대자동차의 핵심 공장 중 하나인 울산 1공장이 멈춰 선다. 변속기 등을 만드는 주요 부품 업체인 현대트랜시스가 한 달째 파업을 이어가면서 부품 공급이 중단된 데 따른 결과다. 현대트랜시스는 지난해 매출 11조7000억원, 영업이익은 1170억원을 낸 현대차·기아의 주력 부품 공급사다. 지난해 1인당 평균 급여액은 1억700만원에 달했다.
이 회사 노조는 지난해 매출액의 2%를 성과급으로 달라고 요구하며 한 달 전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작년 영업이익의 두 배에 달하는 2300억원을 성과급으로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현대차 울산 공장이 파업으로 멈춰 선 것은 6년 만에 처음이다.
현대차는 “5일부터 1공장 휴업을 진행한다”며 “소형 SUV 코나를 만드는 1라인은 5일부터 8일까지, 전기차 아이오닉5를 생산하는 2라인은 18일까지 생산을 중단한다”고 4일 밝혔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으로 수익성과 판매에 빨간불이 켜진 현대차는 이번 가동 중단으로 생산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현대차 관계자는 “부품 공급 중단의 영향을 받는 1라인과 함께 전기차 수요 감소로 인한 수급 조절이 필요한 2라인까지 같이 멈추면서 1공장 가동을 전면 중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현대트랜시스의 지난해 변속기 등 생산량은 약 400만개였다. 지난해 기준 국내 승용차 변속기 시장의 65%, 승용차 액셀러레이터 시장의 49%를 차지하며 국내 1위였다. 이번 파업으로 공급이 차질을 빚은 변속기 수량은 15만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업이익 2배 성과급 달라”
현대트랜시스의 파업은 임단협 교섭이 시작된 지난 6월로 거슬러간다.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영업이익이 1000억원을 넘어서자 노조는 대규모 성과급을 원했지만, 회사 측은 낮은 영업이익률을 이유로 난색을 보였다.
계속된 임단협 교섭에서 노조의 요구 조건은 기본급 15만9800원 인상(정기 승급분 제외)과 작년 매출액의 2%를 성과급으로 지급해 달라는 것이었다. 작년 매출액(약 11조7000억원)의 2%는 2300억원 수준으로, 지난해 영업이익(약 1170억)의 두 배에 달하는 규모다. 이 같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노조는 최대 사업장인 충남 서산시 지곡공장에서 지난달부터 파업에 들어갔다.
현대트랜시스는 영업이익을 매출액으로 나눈 영업이익률이 지난해 기준 1%로, 현대모비스(3.9%)·현대위아(2.6%) 등 다른 현대차그룹 계열사에 비해 크게 낮다. 100원을 팔아도 손에 쥐는 건 1원에 그치는 현실에서 노조의 성과급 요구를 맞추기 위해선 사측이 추가로 1원을 빚을 내야 하는 상황이다. 노조 측은 “현대차그룹이 완성차 부문 실적을 늘리기 위해 단가를 낮게 책정하여 이익을 몰아주다 보니 현대트랜시스의 수익성이 훼손됐다”고 반발한다.
현대트랜시스 노조는 성과급 요구를 사측이 받아들이지 않자, 최근에는 ‘상경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지난달 26일에는 노조원들이 서울 용산구 한남동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자택 인근에서 시위했고, 이틀 뒤인 28일에는 서초구 양재동 현대차 본사 앞에서 1000여 명이 4차선 도로 중 3개 차선을 가로막고 집회를 열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가 현대트랜시스 노조와의 협상 주체는 아니지만, 압박 효과를 노리고 이 같은 상경 시위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현대트랜시스 사측은 지난달 말 열린 임단협 교섭에서 기본급 9만6000원 인상(정기 승급분 포함), 경영 성과급 300%와 추가 700만원 등을 제시했지만, 노조는 거부했다. 현대트랜시스 노조는 이날 쟁의대책위원회를 열고 8일까지 전면 파업을 연장하기로 했다.
◇장기화하면 추가 영향 불가피
파업을 진행하는 현대트랜시스 지곡공장은 지난해 현대차·기아의 쏘나타, 그랜저, 싼타페, 제네시스 등 주요 차종에 들어가는 변속기를 180만개 이상 생산했다. 파업에 동참하지 않은 인근 성연공장도 있지만, 두 공장의 생산 제품이 달라 파업에 따른 수급 어려움은 다른 차종으로 확산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글로벌 자동차 업계가 전기차 캐즘에 시달리고, 현대차 실적이 3분기 들어 꺾인 상황에서 현대트랜시스발(發) 생산 차질은 국내 자동차 산업에 더 큰 어려움으로 돌아올 것이란 우려가 커진다. 한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올 3분기 들어 글로벌 자동차 수요가 급감하고 수익성이 크게 나빠지고 있다”며 “노조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성과급 요구보다는 위기감을 갖고, 합의점 도출에 노력해야 할 때”라고 했다.
이번 파업이 현대 트랜시스 노조에도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 원장은 “과거 GM, 포드 등도 협력 부품업체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다가 이후 협력사의 혁신 역량이 떨어지고, 수급에 차질이 생기자 각자도생으로 방향을 틀었다”며 “현대차·기아가 이번 파업을 계기로 해외 업체를 포함해 부품 공급처를 다변화하면 현대트랜시스 입장에선 실적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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