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한 항구에서 브라질로 수출하기 위해 선적을 기다리고 있는 중국 비야디(BYD) 전기차. /로이터 연합뉴스

폴크스바겐 등 유럽 자동차 업체에 이어 일본 자동차 업체들도 흔들리고 있다. 글로벌 자동차 업계가 곳곳에서 ‘차이나 리스크’를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혼다·닛산 등 일본 자동차 기업들은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 시장에서 중국 차에 밀리고 있는 데다 수십 년 동안 ‘안방’으로 호령했던 동남아에서도 중국 차에 턱밑에서 추격당하고 있다. 내연차·하이브리드차에 의존해 온 일본 차 기업들은 전기차 전환이 중국·미국 등에 뒤처졌지만, 캐즘(수요 둔화) 장기화의 반사이익을 얻어 최근 수익성에서 그나마 선방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엔 중국 시장에서 고전을 하는 데다 중국 밖 시장에서 중국 차에 밀리면서 차이나 리스크를 피해 갈 수 없게 된 것이다.

일본 3위 업체 닛산은 지난 7일 전 세계 직원(약 13만명)의 7% 안팎인 9000명을 해고하고, 생산량 20%를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닛산이 보유한 미쓰비시자동차의 지분(34%) 중 10%도 매각해, 최대 686억엔(약 6000억원)을 조달하겠다고도 했다. 수익성 악화에 따른 조치다. 닛산은 3분기(7~9월)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84.7% 급감해 319억엔(약 2900억원)에 그쳤다. 우치다 마코토 닛산 CEO(최고경영자)는 이날 열린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시장이 급격히 변화했음에도 고객 요구에 부응하지 못했다.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며 “이달부터 저를 포함한 임원들이 급여 절반을 반납할 것”이라고 했다. 일본 1위이자 글로벌 1위인 도요타(-19.6%), 일본 2위 업체인 혼다(-14.6%)도 3분기 영업이익이 나란히 급감했다.

그래픽=박상훈

◇중국·동남아서 中에 쫓기는 日

일본 자동차 업체들이 올 3분기 들어 줄줄이 악화된 실적을 발표하는 배경에는 중국 전기차 업체들의 급성장이 있다. 혼다는 3분기 영업이익이 작년 동기 대비 14.6% 줄어든 2579억엔(약 2조3000억원)을 기록했다. 일본과 미국에서 판매량은 각각 22%, 8% 늘었지만, 글로벌 판매량의 4분의 1 안팎을 차지하는 중국에서 판매량이 43% 급감한 데에 따른 것이다. 닛산도 3분기 중국 판매량이 12.7% 줄며 수익성이 크게 악화됐다. 일본 판매량은 소폭 올랐지만, 중국에서 실적 악화가 발목을 잡았다.

특히 중국 내수 시장에서 전기차 후발 주자인 일본 차의 타격이 크단 지적이다. 올 상반기 중국 시장에서 중국 브랜드의 판매량(약 556만대)은 작년 동기 대비 18% 안팎 올랐다. 같은 기간 도요타·혼다·닛산 등 일본 브랜드 판매량(약 147만대)은 12% 안팎 줄었다.

일본 차는 90% 안팎 점유율을 차지해 왔던 동남아 시장에서도 중국 전기차에 쫓기고 있다. 최근 동남아에선 인도네시아·태국 등 정부가 전기차 친화 정책을 펼치면서, 전기차 시장이 커지고 있다. 작년 동남아 최대 시장인 태국에서 도요타, 혼다 등 일본 브랜드 점유율은 78%였다. 반면 중국 차 점유율은 재작년 대비 2배 안팎 증가해 11% 수준에 이르렀다. 특히 전기차 부분에선 중국 차 점유율이 80% 안팎에 달했다.

중국 BYD(비야디)의 전기차 '아토 3'.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에서 비야디를 비롯한 현지 브랜드가 약진하면서 일본·유럽 제조사들이 고전하고 있다. 올 상반기 중국에서 자국 브랜드 판매량은 1년 전보다 약 18% 늘었지만, 일본 브랜드는 12% 정도 줄었다. /로이터 뉴스1

◇전기차 뒤늦게 따라가는 일본

일본 자동차 업체들은 최근 들어 대규모 투자와 합종연횡을 통해 전기차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기차 전환을 위해서라면 적과의 동침도 감수하는 것이다. 일본 2위와 3위 업체인 혼다와 닛산이 전기차와 차량용 소프트웨어 협력을 위해 지난 3월 동맹을 맺었고, 지난 8월엔 이 동맹에 미쓰비시 자동차가 합류했다. 미베 도시히로 혼다 사장은 “혼다와 닛산에 이어 미쓰비시자동차까지 가세함으로써 전동화와 지능화를 둘러싼 과제가 속도감 있게 해결될 것”이라고 했다. 도요타도 스바루, 마쓰다, 스즈키 등 일본 업체와 차세대 전기차 기술에 관해 협력하고 있다. 또, 혼다는 지난 5월 2030년까지 전기차 전환 등에 10조엔(약 91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일본 업체들이 대규모 투자를 하더라도 향후 판도를 뒤집기 어려울 거란 시각도 있다. 이미 전기차 생태계를 갖춘 중국과 차이가 크고, 인구 밀도가 높고 도로가 좁은 일본에서 충전소 설치에 한계가 크단 점도 거론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유럽연합, 미국 등이 중국 전기차에 관세를 높이면서 후발 주자인 일본으로선 시간을 벌었지만, 이미 격차가 크게 벌어져 따라잡을 수 있을진 의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