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행정부의) 어떤 규제에도 준비돼 있다.”
21일(현지 시각) 미국 LA(로스앤젤레스) 오토쇼. 현대차 CEO(최고경영자)로 지명받은 호세 무뇨스 사장이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따른 우려를 묻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답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전기차 보조금을 폐지·축소하고 무역 장벽을 높일 것이라는 전망에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격랑에 휩싸였지만, 현대차는 충분히 준비했다는 것이다. 그는 “전기차는 장기적으로 가야 하는 길이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변화에) 유연하게 조정할 준비가 됐다”며 “우리는 미국의 신공장에서 하이브리드,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 심지어 수소전기차까지 생산할 준비가 돼있다. 현대차는 전기차만이 아니라 관련된 모든 기술에 투자해야겠다는 의지를 다진 적이 있는데 아주 좋은 전략이었다”고 말했다.
무뇨스 사장이 지난 15일 CEO로 지명된 후 현대차의 전망과 비전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그는 트럼프 2기 출범과 전기차 수요 정체 등 현대차가 직면한 내외 상황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전날 열린 ‘아이오닉9′ 공개 행사에선 신차 소개만 하고 말았지만, 이날은 ‘LA 오토쇼’ 프레스 콘퍼런스를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와 국내외 취재진 수십 명에게 둘러싸여 즉석 질의 응답을 이어갔다.
현대차의 첫 외국인 CEO 낙점은, 현대차에 가장 중요한 시장이 된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 취임 변수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려는 조치로 보인다. 무뇨스 사장은 2019년 현대차에 합류해, 북미권역본부장과 최고운영책임자를 지내며 현대차의 미국 시장 점유율 확대에 기여했다는 평을 받는다.
◇“미국은 현대차에 가장 중요한 시장”
이날 무뇨스 사장은 “미국은 현대차에 현재도 앞으로도 가장 중요한 시장”이라고 말했다. 현재 현대차의 4대 해외시장은 미국, 유럽, 인도, 중국이다. 원래 2위였던 미국은 2019년 중국을 제치고 해외 1위 시장에 올라섰다. 최근 한국·유럽을 비롯한 주요 시장이 경기 침체로 판매가 주춤한 가운데 미국 판매가 실적을 견인 중이다. 올 3분기만 해도 유럽(-9.5%), 인도(-5.7%) 판매는 전년 동기 대비 감소했지만, 미국(+11.6%)은 크게 늘었다. 현대차 판매량에서 미국 비율도 작년 20.6%에서 올 1~3분기 기준 24.3%로 급증했다.
현대차는 지난 10월 미국 조지아주에 연산 30만대 규모 공장 ‘메타 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현대차그룹의 세 번째 미국 공장으로, 76억달러(약 10조7000억원)를 투자했다. HMGMA 가동으로 현대차는 미국산 전기차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IRA(인플레이션감축법) 시행 2년여 만에 보조금 요건을 충족할 수 있게 됐지만, 트럼프가 보조금을 없애면 투자 손실을 입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이에 대해 무뇨스 사장은 “(현대차는) 세금과 보조금에 기반해 사업 계획을 짜진 않는다. 미국 투자는 IRA 시행 이전에 결정된 것”이라며 “현대차는 전기차로 수익을 내고 있으며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뇨스 사장은 그러면서 “배터리 공장을 포함하면 조지아주 투자액만 126억달러에 이른다. 단순히 돈과 일자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 대한 약속”이라고 강조했다.
무뇨스 사장은 최근 전기차 전환이 충전 불편과 높은 가격 등을 이유로 정체기에 접어들었지만, 큰 방향성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의선 회장과 장재훈 사장이 정한 방향성이 기본적으로 옳다고 생각한다. 그 덕분에 현대차는 세계 3위 자동차 제조사이자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테슬라 다음으로 큰 회사가 됐다”며 “이 전략이 이미 잘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큰 변화를 주진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새로운 기술과 제품, 디자인을 도입하는 건 물론이고 비용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겠다”고도 했다.
한편 이날 현대차는 LA 오토쇼에서 아이오닉9과 수소전기차 콘셉트카 ‘이니시움’, 기아는 대형 전기 SUV ‘EV9′의 고성능 모델을 공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