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을 비롯한 전자 기기를 만들던 중국 빅테크 기업이 전기차 시장에 속속 가세하고 있다. BMW·벤츠 같은 고급차보다 비싸고, 전기차 1위 테슬라보다 성능이 뛰어난 전기차를 내놓는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미국 테슬라와 중국 BYD(비야디)로 양분되는 가운데, 빅테크 기업의 참여로 중국 전기차가 한층 몸집을 키우는 셈이다. 그 배경에는 지난 10여 년 동안 정부 지원 아래 견고해진 중국 전기차 생태계가 있다. 중국은 전기차 핵심 부품인 배터리 분야에서 기업들이 선두를 차지하고 있고, 최근엔 다수의 완성차 기업이 해외로 진출하며 생산 노하우를 쌓았다. 중국에선 충분한 자금이 있으면 이들과 손을 잡아, 전기차를 생산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화웨이는 자체 첨단 기술을 앞세워 고급차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27일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화웨이가 체리자동차·베이징자동차 등과 합작해 만든 브랜드들은 지난 9월 중국에서 평균 7400만원에 판매됐다. 벤츠, BMW, 테슬라 등 주요 브랜드보다 비싼 가격이다. 올 1~9월 기준 중국 내수 판매량도 약 31만대로, 전기차 시장 7위에 올랐다. 이런 실적 덕분에 올해 상반기 자동차사업부가 처음 흑자 전환했다. 순이익 22억3000만위안(약 4300억원)을 기록했다.
샤오미는 첫 전기차 ‘SU7′을 생산한 지 8개월 만인 이달 중순 10만대 생산을 달성했다. 테슬라 ‘모델3′의 10만대 생산 기록(약 460일)을 절반으로 단축했다. SU7은 포르셰 ‘타이칸’을 모방한 듯한 디자인 때문에 출시 직후 조롱받았다. 그런데 이제는 샤오미가 그 어느 중국 전기차 기업보다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 셈이다. SU7은 경쟁 차량인 테슬라 모델3와 비교해 주행거리 등 성능에서 앞선다. 레이쥔 샤오미 회장은 지난 13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출시 230일 만에 생산량 10만대를 넘어선 것은 전례 없는 기적”이라고 했다. 연간 생산 목표도 기존(12만대)보다 1만대 높이겠다고 했다.
◇어디든 손 내밀 수 있는 전기차 생태계
빅테크 업체들이 최근 자동차 산업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배경에 정부 지원과 세계 최대 내수에 힘입어 성장한 전기차 생태계가 있다. 이미 배터리·차체 등 전기차의 주요 부품을 생산하고 공급하는 체계가 중국 내에 갖춰져 있기 때문에, 자동차 산업에 뛰어드는 진입 장벽이 주요 국가보다 낮다는 것이다. 특히 가전을 비롯한 기존 사업에서 큰 수익을 내는 빅테크 기업들의 경우, 자금력을 바탕으로 기존 업체들과 협력 관계를 속속 맺고 있다. 게다가 미래 차의 핵심인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이미 강점을 가진 만큼, 전기차 시장에 더 잘 적응한단 분석이다.
샤오미는 전기차 시장 진출을 선언한 지 3년 만인 올 초 첫 전기차를 내놨다. 10년간 100억달러(약 14조원)를 투자하겠다 발표했고, 작년 연산 20만대 규모 공장을 베이징 외곽에 지었다. 베이징자동차와 협력해 생산 노하우를 배웠고, 세계 최대 배터리 회사인 CATL과 배터리 합작사를 설립하기로 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샤오미 전기차의 빠른 성장은 타 브랜드와 적극적 제휴를 맺고, 중국의 생태계가 갖춰진 덕분”이라고 했다.
화웨이의 경우 직접 자동차를 생산하지 않지만, 중국 완성차 기업들과 합작사를 세우고 있다. 아이토·루시드·스텔라토·마에스트로 등으로, 화웨이가 차량 개발과 품질 등을 공동 관리한다. 그 밖에 자율 주행 소프트웨어와 부품 등을 공급하는 중국 업체도 10여 개에 이른다.
◇中 자동차 원가, 테슬라 절반 수준
세계 최저 수준의 생산 원가 역시 빅테크 기업 등 중국 자동차 업체가 우후죽순 자동차 산업에 뛰어드는 뒷배가 되고 있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작년 비야디의 차량 1대당 매출 원가는 1만7400달러로, 테슬라의 절반 수준이다. 매출 원가는 생산과 판매에 드는 각종 비용을 뜻한다. 수년 전 테슬라가 주조 기계(기가 프레스)로 특수 알루미늄 합금 소재로 제작된 차체를 찍어내는 ‘기가 캐스팅’을 도입하며 제조 공정을 단순화하고 비용 혁신을 이뤘고, 중국 자동차 기업들이 이를 잇따라 도입하고 있다. 여기에 중국의 낮은 임금과 탄탄한 공급망도 원가를 낮추는 데 기여하고 있다.
샤오미는 테슬라와 마찬가지로 주조 기계로 차체를 한 번에 찍어내는 공정을 도입했다. 현재 베이징에 두 번째 공장을 짓고 있는데, 여기선 두 번째 차량으로 SUV를 생산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