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동차 5사의 11월 내수 판매가 작년 대비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극심한 내수 부진 속 지난달 12만3616대 판매로 1년 전보다 6.4% 줄었다. 지난 2~9월 8개월 연속 감소하다가 10월에 5.9% 늘었지만, 한 달 만에 다시 감소했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이 길어지는 가운데 경기 부진까지 겹친 영향이다.
세계 경기 둔화로 11월 해외 판매량은 2.1% 증가에 그쳤다. 국내외 전체 판매는 거의 제자리걸음(0.6% 증가)이다. 홀로 호황인 북미 시장 변수를 감안하면 해외 판매도 사실상 감소세라는 분석이다. 현대차는 지난 3분기(7~9월) 북미에선 판매량이 9.3% 늘어난 반면, 유럽(-9.5%), 인도(-5.7%), 중남미(-4.3%) 등 대다수 해외시장에선 판매가 줄었다. 반도체를 대신해 지난해 국내외 호조를 바탕으로 국내 산업을 이끈 자동차가 1년 만에 성장세가 꺾인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내년 BYD(비야디)의 국내 출시 등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 차의 공세가 거센 상황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자동차를 대상으로 한 다양한 보호무역 장벽을 예고해 내년 시장 상황에 대한 우려도 커진다. 한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지금과 같은 수요 실종은 IMF 외환 위기, 코로나 초기 때와 같은 수준”이라고 했다.
◇현대차, 4분기도 실적 부진 지속
현대차는 2일 지난달 국내 시장에선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3% 급감한 6만3170대, 해외시장에선 1.6% 줄어든 29만2559대를 판매했다고 밝혔다. 올 들어 마이너스(-) 행진을 계속하던 내수 판매는 8~10월 다소 회복하더니 11월 다시 감소세로 돌아서 누적 판매 대수가 작년과 5만6000대 넘게 벌어졌다.
해외 판매 또한 1~11월 누적 기준 지난해보다 약 8000대가 준 것으로 집계됐다. 현대차는 지난 6월부터 6개월 연속 해외 판매가 감소세를 기록 중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국내외 수요 부진에 현대트랜시스 파업에 따른 조업 중단 영향까지 겹쳐 11월 실적이 부진했다”고 했다.
국내외 판매 부진으로 현대차가 4분기에도 실적 부진이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지난 3분기 현대차는 전 세계 기준 영업이익은 6.5% 줄고 판매 대수는 3.2% 감소했다. 기아도 11월 내수가 작년보다 4% 감소하면서 전체 실적은 지난해와 비슷한 0.8% 증가에 그쳤다.
얼어붙은 경기 때문에 중견 자동차 업체도 실적에 직격탄을 맞았다. KG모빌리티와 GM 한국 사업장은 내수 판매가 작년 같은 달보다 각각 34.5%, 39.6% 빠졌다. 하반기 출시된 ‘그랑 콜레오스’의 신차 효과가 두드러진 르노코리아를 제외하면 경기 둔화 영향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 폭설로 기아 화성 공장이 가동을 멈춘 것처럼 일부 업체의 생산이 차질을 빚어 12월 실적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했다.
◇“올해보다 내년 상황이 더 안 좋을 것”
내년은 올해보다 더 힘겨운 해가 되리라는 예상이 나온다. 기준금리 인하에도 소비 심리가 살아나지 않는 현실에서 고가(高價) 내구재인 자동차 판매가 더 쪼그라들 수 있다는 것이다. 해외에서도 주력 시장인 미국 판매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신시장 개척도 쉽지 않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리 자동차 수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미국 시장이 트럼프 변수로 불안한 상황”이라며 “유럽, 아세안 등도 경기 부진과 경쟁 격화로 판매 확대가 어렵다”고 말했다.
세계 각국에 밀려드는 중국산 전기차의 공세도 국내 업체에 큰 위협이다. 전통 강자들이 아닌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업체와 경쟁이 본격화한다는 것이다. 고태봉 iM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일본과 독일 업체들이 중국과 유럽, 아세안 등에서 중국 업체에 밀리며 겪는 어려움이 우리에게도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