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산자동차 우치다 마코토 사장 겸 최고경영자(왼쪽)와 혼다자동차 미베 토시히로 사장이 미쓰비시자동차와 공동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일본 2위와 3위 자동차 업체인 혼다와 닛산이 23일 도쿄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합병 추진을 공식화했다. 내년 6월까지 협상을 마무리하고, 2026년 8월에는 이 회사들을 운영할 지주회사를 설립해 상장시킬 계획이다. 새롭게 탄생하는 자동차 그룹은 현대차그룹을 제치고 글로벌 3위에 오르게 된다. 이번 합병으로 글로벌 3위 자동차 기업 중 두 개가 일본 기업으로 채워지게 되는 것이다. 닛산이 최대 주주로 있는 일본 4위 업체 미쓰비시는 내년 1월까지 검토를 거쳐 합병 여부를 판단한다.

혼다와 닛산은 이날 양사 합병을 위한 기본 합의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양사는 2026년 4월 임시 주주총회를 거쳐, 같은 해 8월쯤 상장을 폐지한다. 대신 지주회사를 만들어 상장시키고, 양사를 지주회사의 자회사로 둔다. 혼다는 지주회사 사장을 선임하고, 사내이사와 사외이사의 과반수도 지명한다. 시가총액에서 닛산(1.66조엔)의 4배에 달하는 혼다(6.66조엔)가 사실상 합병을 주도하게 되는 것이다.

과거 독자 기술을 바탕으로 전 세계를 호령했던 양사는 중국 판매 급감, 전기차 전환 지연, 주요 시장인 동남아 시장에서 밀려나는 위기에 처해, 합병이란 초강수를 둔 것으로 보인다. 닛산은 1990년대 말 경영 위기 속 르노와 맺은 불편한 동맹 관계가 지속되면서, 독자 기술 개발이 늦어져 글로벌 시장에서 점차 밀려났다. 혼다와 닛산의 지난 3분기(7~9월) 영업이익은 작년 동기 대비 각각 14.6%, 84.7% 줄었다.

그래픽=백형선

◇전기차·소프트웨어 혁신 속도 낸다

혼다와 닛산은 합병으로 전기차와 소프트웨어 분야 혁신에 속도를 낼 수 있을 거란 전망이다. 이날 미베 도시히로 혼다 사장은 “3개 회사의 힘을 합쳐 전동화·지능화를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닛산은 세계 최초의 양산 전기차 ‘리프’를 출시하며 전기차 분야에서 앞서 있단 평을 받는다.

양사는 R&D(연구·개발)와 생산 분야에서 기술과 인력을 공유해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미베 사장은 “경영통합 후에 영업이익 3조엔(약 28조원) 이상을 내며 세계를 선도하는 기업이 될 것”이라고 했다. 작년 기준 혼다(1조3819억엔)와 닛산(5687억엔)의 영업이익을 합하면 2조엔(약 19조원) 수준이다.

다만 양사의 합병에서 당장 시너지를 기대하기 어렵단 시각도 있다. 카를로스 곤 전 르노·닛산·미쓰비시 회장은 이날 일본 기자들과 화상 간담회에서 “혼다와 닛산의 합병이 개인적으로는 성공할 것 같지 않다”며 “모든 면에서 중복이 있다”고 했다. 주요 시장이 일본, 미국, 중국으로 겹치고, 양사 모두 별도 브랜드를 내며 고급차 시장에 매진하고 있단 것이다.

닛산 자동차 사장 겸 최고경영자 우치다 마코토(왼쪽부터), 혼다자동차 사장 미베 토시히로, 미쓰비시자동차 사장 겸 CEO 가토 타카오가 23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공동 기자회견이 끝난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일본차 반격 시작되나

형식적인 합병을 넘어 기업 문화를 통합하는 구조조정도 관건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합병과 두 회사의 독특한 문화를 융합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며 “이미 카를로스 곤 체제에서 르노와 닛산은 조직 문화 차이를 해소하는 데 실패했다”고 했다.

이번 합병으로 추락한 일본차의 위상을 회복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일본 기업들은 전기차 전환, 중국차의 부상과 같은 위기 외에도 부진한 디지털 전환과 느린 의사 결정 같은 관행도 문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