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반도체 자체 생산을 통해 미래차 전환에 속도를 낸다. 세계 최대 배터리 생태계를 발판으로 전기차 선두 주자로 올라선 데 이어, 미래차 핵심 부품으로 꼽히는 반도체까지 자국 내에 생태계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실제로 중국 자동차 기업들은 최근 자율 주행차나 플라잉카(비행하는 자동차) 등에 탑재되는 인공지능(AI) 반도체 개발에서 속속 성과를 내놓고 있다.
중국 자동차 산업의 다음 변곡점이 반도체 분야에서 나올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최고경영자)가 “중국 전기차 회사들은 모든 미래 자동차가 강력한 자율 주행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기준을 설정했다”고 말할 정도로 중국 자동차 업체들은 미래차 분야에서 앞서 나간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율 주행·SDV(소프트웨어 중심의 차) 같은 미래차에는 전력 사용량이 더 많고, 더 많은 센서가 탑재되기 때문에 반도체 성능이 관건이다. 다만, 반도체의 해외 의존도가 90% 안팎으로 높은 것이 골칫거리였는데 이 문제를 자체 생산으로 해결한다는 것이다. 미국 등 세계 각국의 무역 장벽이 높아지는 것도 중국 업체들의 반도체 자립에 속도를 붙이고 있다.
◇반도체 자체 생산 나서는 中 업체들
중국 전기차 업체 니오는 자율 주행차에 적용될 AI 반도체 ‘NX9031′을 지난해 개발, 올해 출시하는 세단 ‘ET9′에 탑재한다. 중국 샤오펑은 특정 구간에서 무인으로 달리는 ‘레벨4′ 수준의 자율 주행차에 적용하기 위해, 작년 AI 반도체 ‘튜링’을 개발했다. 데이터 처리 속도가 기존 샤오펑 차에 탑재되는 반도체 대비 3배에 가깝다. 로봇과 플라잉카 등에도 향후 적용하겠단 계획이다.
중국 1위 업체 비야디(BYD)는 운전석 주변 구동에 쓰이는 ‘BYD 9000 스마트 콕핏 칩’을 개발, 산하 브랜드 팡청바오의 대형 SUV ‘레오파드8′에 장착했다. 작년 초 자율 주행 기술 개발에 1000억위안(약 2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고, 상당 부분은 자율 주행에 필요한 반도체 개발에 투입될 전망이다.
차량용 반도체는 중국에 ‘아픈 손가락’이었다. 중국은 10여 년 전부터 관련 산업을 육성했지만, 해외 기술에 의존하다 최근 들어서야 국산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중국은 내부적으로 작년 15% 수준의 국산 차량용 반도체 사용 비율을 올해 25%까지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중국 전기차 업체들이 잇따라 반도체 개발에 성공하면서, 미래차 기술과 시너지가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중국은 여러 도시에서 규제를 풀어 세계 최고 수준의 자율 주행 데이터를 쌓고 있다. 반도체 기술을 바탕으로 미래 기술이 탑재된 자동차를 자체 생산하고, 그 차를 자국 내에서 실험하면서 ‘미래차 생태계’를 확고히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中 “미국산 반도체 사용 금지” 첫 공개 경고
세계 곳곳에서 중국을 향해 쌓아 올리는 무역 장벽 역시 중국 자동차 기업들이 자체 반도체 개발에 나서게 하는 이유로 꼽힌다. 13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국영 단체인 중국자동차공업협회(CAAM)는 지난달 초 중국 자동차 기업들에 미국산 반도체를 구매하지 말라며 처음으로 공개 경고했다. 미국산 반도체의 안전성과 신뢰도가 낮다는 게 표면적 이유이지만, 최근 잇따른 미국의 제재로 반도체 자립이 더욱 절박해졌기 때문이다. 이달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이후에도 반도체를 비롯한 대중 제재가 강화될 거란 전망이 적지 않다.
중국 정부는 반도체를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유럽 업체들의 러브콜을 적극 수용하고 있다. 유럽 2위 반도체 기업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가 차량용 반도체 생산을 위해 중국 현지에 세운 공장은 올해 말 가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네덜란드 기업 NXP도 최근 중국 내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기업과 반도체 생산 계약을 맺었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속 중국 내수와 기업들의 나 홀로 성장이 이어지고 있어,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의 부품 국산화에 속도가 점점 붙을 거란 전망이다. WSJ는 “세계 최대 규모의 전기차 제조 산업이 중국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 전기차 부품을 만드는 모든 업체를 (중국으로) 끌어당기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