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월 1일 757억달러(약 86조7000억원)였던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시가총액은 지금(17일) 4105억 달러다. 10개월 사이 5.4배로 커졌다. 자동차를 다섯 배 더 판 건 아니다. 회사 매출(상반기) 지난해보다 올해 8.8% 성장했을 뿐이다. 테슬라만큼은 아니지만 아마존(78% 상승)과 애플(58%)·마이크로소프트(MS·39%)·페이스북(29%)·구글(16%) 등 이른바 ‘5대 빅테크’의 주가는 모두 올 초 대비 크게 올랐다. 이들이 포함된 기술주 중심의 미 나스닥 지수는 연초보다 30% 뛰었다.

테크 기업들이 이끈 증시 과열에서 20년 전 ‘닷컴 버블’을 떠올리는 이가 많다. 1990년대 후반부터 인터넷 열풍에 올라탄 기업들이 우후죽순 증시에 이름을 올리며 블랙홀처럼 자금을 빨아들였다. 회사 이름에 ‘닷컴(dot-com)’ 정도는 붙어야 돈이 되던 시대였다. 하지만 이 ‘IT 버블’은 2000년을 기점으로 붕괴했다. 2000년 3월 10일 5048.62로 고점을 찍은 나스닥은 2002년 10월 9일 1114.11까지 80% 가까이 추락했다.

/그래픽=김성규

2020년 판 ‘IT 버블 붕괴'가 닥치는 건 아닐까. 지난달 초 1만2000을 돌파했던 나스닥이 이후 10% 이상 급락하자 시장엔 불안감이 감돌았다. 증시는 곧 회복했지만 ‘언제든 폭락할 수 있다’는 공포는 여전히 감돌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경제 전반이 가라앉은 가운데 주요국 정부가 돈을 풀면서, 증시만 비정상적으로 부풀었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투자자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파이낸셜타임스는 17일 “미 연방준비제도 고위 관계자들이 저금리 정책으로 인한 자산 거품을 막기 위해 금융 규제를 강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16일 “시장 대비 기술주 비율이 과거 닷컴 버블 시대와 맞먹는 수준으로 늘었다”고 전했다.

Mint는 국내외 테크·증시 전문가 20명에게 IT 버블 붕괴 가능성에 대해 물었다. ‘증시가 어느 정도 과열됐지만 2000년만 한 버블은 아니다’란 다수 의견과, ‘극심한 버블’이라는 소수의 경고로 엇갈렸다. 2000년과 2020년, 두 시장 상황이 어떻게 같고 다른지 Mint가 분석했다.

'지금은 버블 아니다'란 전문가 의견

◇거품 아니다: 증시 상승 주도 기업, 실적 탄탄

전문가들이 거품이 아니라고 본 가장 큰 근거는 ‘기업이 돈을 벌고 있다’는 점이었다. 대니얼 이브스 웨드부시증권 디렉터는 “과거 상당수 IT 기업이 이렇다 할 실적도 없이 1980년대 록스타만큼이나 빠르게 자금을 끌어모았다면, 지금 증시 붐을 이끄는 빅테크들은 모두 수익이 뚜렷한 사업 모델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1990년대 말 IT 버블 당시엔 기대를 모으고 나스닥에 상장했다가 순이익 한번 못 내고 파산한 기업이 적지 않았다. 웹밴(온라인 식료품 판매 업체), 코즈모닷컴(온라인 배송 업체) 등이 대표적이다. 투자정보기업 바이탈놀리지의 애덤 크리사풀리 창업자는 “과거 IT 버블 당시 통신 분야 회사들은 과잉 투자를 통해 회사의 ‘미래’를 부풀렸다. 현재 IT 기업들은 100% 활용 가능한 실용적 설비에 투자하고 있다”고 했다. 허투루 쓰는 돈이 적다는 것이다.

‘5대 빅테크’는 올해 코로나 위기 속에서도 지난해보다 평균 10%가 넘는 매출 증가를 전망하고 있다. 제이 리터 플로리다대 금융학부 교수에 따르면 2000년 상장된 테크 기업 가운데 흑자를 낸 비율은 14%에 불과했다. 지난해 기준으론 이 수치가 31%로 올라가 있다. 올리버 존스 캐피털이코노믹스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지금의 대형 IT 기업들은 큰 이익을 바탕으로 수많은 인수·합병을 거치며 시장 지배력을 강화했고, 작은 기업들도 저마다 수익을 내고 있어 증시 전체가 거품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코로나 사태로 비대면 영역이 확대된 것도 IT 기업의 가치를 끌어올린 배경이다. 라이언 제이컵 제이컵자산운용 회장은 “사람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온라인 서비스 수요와 각종 디지털 거래가 급증하고 있다. 전염병 확산이 경제 전체엔 악영향을 미쳤지만, 기술 기업엔 오히려 호재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제임스 매킨토시 월스트리트저널 수석 칼럼니스트는 “시장이 과열된 상태라 잠시 조정기를 맞을 순 있다. 하지만 거품 혹은 그 폭발과는 거리가 멀다”며 “미·중 무역전쟁이나 미 대선 등 외부 이슈의 상황에 따라 테크 기업의 주가는 계속 오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거품이다: IT 편중, 개인 투자도 과열

'제2의 IT 버블이다'란 전문가 의견

반면 심각한 거품 상태라는 진단도 적지 않았다. 증시 거품을 가늠하는 대표적 지표가 주가수익비율(PER·주가를 주당 순이익으로 나눈 것)이다. 이 수치가 높을수록 실제 가치보다 고평가된 것이다. 현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의 평균 PER은 27배이다. 이와 비교하면 아마존의 PER이 120배 수준이고 애플과 MS, 구글, 페이스북 모두 30배를 넘는다. 테슬라는 무려 1100배에 달한다.

과거 어느 때보다 전체 증시에서 IT 기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는 점도 IT 거품 우려를 키운다. S&P500 중 IT 업종의 비율은 39%로 ‘IT 버블’ 직전인 1999년 말(37%)보다 이미 높아져 있다. 마이클 캐니벳 실버라이트 자산운용사 회장은 “이런 특정 업종에의 집중 현상은 거품 붕괴의 전조”라고 말했다.

시중에 풀린 돈이 늘고, 개인 투자자 유입이 급격히 늘어났다는 점도 20년 전과 비슷하다. 파와드 라자크자다 싱크마케츠 애널리스트는 “1990년대 후반 온라인 주식 거래 도입으로 소액 투자자 활동이 활발해졌었는데, 최근엔 ‘로빈후드’(미 무료 주식 거래 플랫폼)가 증시를 달구고 있다”고 했다. ‘로빈후드’ 사용자는 코로나 팬데믹 전후 300만명이 늘어 현재 1300만명에 이른다. 한국의 ‘동학 개미’처럼 미국에선 ‘로빈후드 투자자’란 말이 유행이다. 라자크자다 애널리스트는 “주식시장에서 자신만 소외될지 모른다는 이른바 ‘FOMO(Fear Of Missing Out·기회를 놓칠지 모른다는 공포) 증후군’도 거품을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거품이 꺼질 경우, ‘원조’ IT 버블 때보다 큰 타격을 입을 것이란 무시무시한 경고도 나온다. 투자자문사 워싱턴피크의 앤드루 팔린 최고투자책임자는 “버블이 무너진 2000년대 초반엔 경제 회복을 위해 금리를 낮출 수 있었지만 ‘제로(0) 금리’ 수준인 지금은 마땅한 해법이 없다”며 “더 깊고 긴 경기 침체가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취재 후기: 마감 후 #mint

이순흥 기자

1997년 5월 미 나스닥에 상장한 아마존의 초기 주가는 1달러였습니다. 1998년까지 10달러 내외였던 주가는 ‘닷컴 광풍’을 타고 이듬해 100달러까지 치솟았습니다. 하지만 곧 거품이 꺼지며 곤두박질했고, 다시 100달러 선을 넘기까지 꼬박 10년이 걸렸죠.

코로나 팬데믹(대유행)에도 아랑곳없이 가치가 상승하는 기술주(株)를 두고 제2의 ‘IT 버블’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의견이 분분하지만, Mint가 인터뷰한 다수 전문가는 20년 전과 유사점이 많지만 뚜렷한 차이도 있다며 ‘거품 아님’에 손을 들었습니다.

이렇다 할 수익 모델 없는 기업들이 시중의 ‘눈먼 돈’을 빨아들였던 2000년과 달리, 지금은 수십·수백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건실한 IT 기업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겁니다. 또 과거엔 창업부터 상장까지 3~4년 만에 ‘초고속’ 질주했다면 이젠 10년 이상 혹독한 시험을 거친 기업이 ‘링(증시)’에 오를 수 있기에 과대 평가될 가능성이 적다는 거죠. 각종 시장 정보를 실시간으로 접하는 투자자들의 높은 안목도 달라진 점일 겁니다.

다시 아마존 얘기로 돌아갑니다. ‘IT 버블’을 겪으며 주가가 폭락했지만, 아마존은 2000년 소용돌이 속에서도 전년 대비 70%에 이르는 매출 성장을 기록하며 생존에 성공했습니다. 공격적인 가격 인하 전략, 플랫폼 기업으로의 전환 등을 통해 ‘빈 수레’가 아니란 걸 시장에 증명한 셈이죠. 위기를 기회로 삼은 아마존은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미래를 알 수 없듯 지금 과열된 시장이 거품처럼 터질지 예상하기란 어렵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증시를 이끄는 ‘빅테크’ 모두 기초(실적)가 탄탄하기에 쉽게 무너지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판단은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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