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우리나라 주요 기업들은 코로나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으로 최악의 위기를 겪을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실적이 오히려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로 촉발된 언택트(비접촉) 디지털 전환의 큰 흐름에 성공적으로 올라탔다는 분석이 나온다.

본지가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와 함께 작년 실적을 공개했거나 증권사 3곳 이상이 실적 전망치(컨센서스)가 나온 주요 332개 기업을 분석한 결과, 대상 기업 중 2019년 대비 작년 영업이익이 늘어난 곳이 200곳(60.2%)에 달했다. 다만 업종별 양극화는 뚜렷했다. 정보통신(IT)·바이오 분야에서는 잇따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고, ‘집콕 수요'를 겨냥한 식품업도 선방했다. 반면 정유·항공·여행 등은 코로나의 직격탄을 맞았다.

◇'디지털 전환' 대세에 올라탄 기업

지난해 초 주당 10만원 선에서 시작한 SK하이닉스 주가는 3월 중순 7만원 선으로 급락했다. 당시 코로나로 인한 불황으로 1분기(2020년) 영업이익이 전년도보다 60% 이상 급감할 것이라는 증권사 리포트가 쏟아졌다. 하지만 실제 SK하이닉스의 작년 1분기 영업이익은 직전 분기보다는 오히려 증가했다. 코로나로 온라인 교육, 재택 근무가 늘면서 서버용 반도체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뿐 아니다. LG전자는 스마트폰 사업의 만성적인 부진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3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매출도 63조원을 넘어서며 역대 최고치였다. LG이노텍도 전년 동기 대비 42.9% 늘어난 681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작년 4분기에만 342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재택근무·원격교육 등으로 늘어난 PC·스마트폰용 카메라 수요를 붙잡았기 때문이다.

작년 국내 주요 기업들의 실적은 IT 업종이 이끈 것으로 나타났다. 본지 332개 기업 분석에서 작년 영업이익이 증가한 200곳 가운데 반도체·플랫폼·게임 등 IT 관련 기업이 67곳(33.5%)이었다. 그다음이 식음료(15곳)와 바이오·제약(14곳) 등의 순이었다.

전기차용 배터리 등 미래 신기술 관련 기업의 실적이 두드러졌다. 자동차용 배터리를 생산하는 삼성SDI(전년 대비 63.3% 상승)와 LG화학(162.7%)의 영업이익은 큰 폭의 성장세를 보였다. 반면 정유·항공·여행 등의 실적은 큰 폭의 하락을 기록했다.

우리 기업들이 실적을 바탕으로 과감한 투자를 단행한 것도 경제성장률의 버팀목 역할을 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경기도 평택에 30조원이 투입되는 반도체 P3라인(3공장) 건설을 시작했다. 포스코도 작년 7월 배터리용 음극재 생산 공장을 착공했다. 연세대 성태윤 교수는 “소매업·서비스 등의 급격한 위축을 기업들이 실적과 투자로 상쇄하고 있다”며 “비상상황에서는 이런 기업들의 동력을 계속 유지해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 대응'에 희비... “실적 지속될지 지켜봐야”

같은 업종이라도 ‘디지털 전환’과 ‘소비 양극화’ 등 코로나가 불러온 산업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실적은 엇갈렸다. 다시 말해 1등 기업으로의 실적 쏠림 현상이 더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유통업 중 이마트는 전년 대비 영업이익이 45.1% 늘어난 반면, 롯데쇼핑은 35.5% 감소했다. 기아차는 작년 4분기 매출 16조9000억원, 영업이익 1조2800억원으로 분기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반면 한국GM과 르노삼성 등은 매출이 급격히 줄며 적자도 눈덩이처럼 커졌다. 한 마케팅 전문가는 “경제가 나빠 소비자들이 씀씀이를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는 1등 기업으로의 쏠림 현상이 더 강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의 실적이 지속될지에 대해선 전망이 엇갈린다. 서울대 박남규 교수는 “코로나로 여행을 못해 경제적 여유가 생긴 중산층 이상 소비자들이 자동차·가전 등을 미리 구매하고, 기업들도 데이터센터 등에 선제적 투자를 한 측면도 있다”며 “올해 하반기에도 이런 추세가 계속될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