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간 쌓아온 말 산업이 존폐 상황에 몰리고 있습니다.”

지난 8일 한국마사회 노동조합을 포함한 32개 말(馬) 산업 단체들은 이런 내용의 호소문을 썼다. 코로나 사태로 경마장이 멈추면서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온라인 마권(馬券) 발매를 허용하는 내용의 마사회법 개정안을 통과시켜달라”고 했다. 23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소위원회를 열고 ‘언택트 경마 허용’을 다룬 마사회법 개정안에 대한 첫 논의를 시작했다. 현행법은 전국 3개 경마장과 지정 장외발매소(30곳)에서만 마권을 팔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온라인에서도 마권을 팔아 ‘언택트’ 경마를 허용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국가가 사행심을 조장하는 게 맞느냐'는 지적이 나오며 결론을 내지 못했다.

국내 말산업 규모

◇”코로나에 말 산업 다 죽겠다”

지난해 코로나 사태가 터지며 말 산업의 근간인 경마가 큰 타격을 받았다. 지난해 2월부터 약 4개월 동안 경마가 아예 중단됐다. 이후 6월부터는 ‘관객 없는 경마’가 이뤄지고 있다. 관객을 받을 수 없고 마권도 팔 수 없어 손해가 막심하지만, 경주마 경기력을 관리하고 말 산업 종사자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마사회는 유보금을 털어 매주 35억원씩 상금을 주고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버는 돈 없이 상금을 줄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매년 1000억원대의 안정적인 순익을 올리며 ‘신의 직장’으로 불리던 마사회는 지난해 4300억원 가까운 당기순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사상 첫 적자다.

마사회는 또 합법 온라인 경매가 막혀 음성적인 불법 온라인 경마가 늘어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예컨대 일본 온라인 경마 실황 영상을 가져와 불법 사이트를 만드는 식이다. 지난해 불법 경마 사이트 차단 건수는 7505건으로 전년(5407건) 대비 39% 늘었다. 코로나 사태로 경마가 멈추면서 이런 문제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가 사행성 조장하느냐” 반론도

그러나 “경제도 어려운데 국가가 도박을 권장하느냐”는 반대도 만만찮다. 온라인으로 손쉽게 경마를 접할 수 있으면, 도박 중독 문제 등이 심해질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국무총리 산하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는 법안 논의 과정에서 “온라인 마권 발매를 허용하면 청소년이 이용할 수 있고, 불법 도박 사이트에 경주 실황 영상이 유출되는 등 문제가 우려된다”는 의견을 냈다. 국회 입법조사처 역시 “(말 산업을 살리겠다는) 경제 논리로만 접근하면 ‘경마는 도박’이라는 인식이 강한 우리 사회에서 국민적 동의를 받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주무 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는 곤혹스러운 입장이다. 말 산업의 어려운 상황을 무시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사행성 조장’ 지적을 외면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온라인 마권 발행이 필요하다는 주장의 취지에 일부 공감하나, 아직 충분한 사회적 공감대가 갖춰지진 않은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