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국내 거래 가격이 5천만대 까지 하락하고 암호화폐 가격이 줄폭락한 23일 서울 강남구 업비트 라운지에서 직원이 암호화폐 시세를 살피고 있다./뉴시스

국내 가상 화폐 가격이 해외보다 높은 ‘김치 프리미엄’ 현상을 이용해 중국의 가상 화폐 투자자들이 조직적으로 차익 거래를 하고 있다는 정황이 확인됐다. 암호 화폐 가격 비교 사이트에 따르면 23일 오후 4시 기준 세계 최대 암호 화폐 거래소인 바이낸스에서 비트코인이 4만8872달러(약 5459만원)에 팔렸다. 반면 같은 시간 국내 거래소 업비트에서는 5789만원이었다. 두 거래소 간 가격 차이가 300만원이 넘는다. 이처럼 국내 거래소 가격이 해외 거래소보다 높은 것을 ‘김치 프리미엄’이라고 한다. 가상 화폐를 한국의 거래소로 옮겨서 팔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고, 이런 점을 중국의 가상 화폐 투자자들이 이용하는 것이다.

◇4월 중국 송금, 작년보다 10.5배 폭증

국민·신한·우리·하나·농협 등 5대 은행의 올해 월별 비거주자(외국인 거주자 포함) 해외 송금 추이를 보면, 이달 들어 지난 13일까지 중국으로 송금된 금액이 9759만달러(약 1090억원)로 집계됐다. 지난해 월평균 중국 송금액(929만달러)의 10.5배에 달한다. 반면, 같은 기간 중국 외 국가로의 송금액은 코로나 사태 등의 영향으로 1억5428만달러로 43% 줄었다. 국회 정무위원회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른 것이다. 중국 송금액은 올 들어 1월 1590만달러, 2월 810만달러, 3월 1350만달러 등 예년 수준을 유지하다가 이달 들어 폭증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들은 “중국의 가상 화폐 투자자들이 ‘김치 프리미엄’ 차익을 챙겨서 대규모 송금을 한 것이라고밖에는 설명이 안 된다”며 “개인 투자자 차원을 넘어서 조직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위안화 송금이 집중적으로 몰리는 지점은 서울 대림동과 인천, 경기 부천시 등 중국인 밀집 지역으로 알려졌다.

◇'김치 프리미엄 차익', 외국인 배만 불려

김치 프리미엄 차익 거래를 위해서는 사고팔 때마다 해당 거래소에 수수료를 내야 하고, 해외 거래소에서 국내 거래소로 가상 화폐를 옮긴 뒤 판매하기 위해서 전송 수수료도 내야 하지만 김치 프리미엄이 이보다 크기 때문에 이런 부가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이익이 남는다. 중국 송금액이 급증한 이달 초에는 비트코인 기준 김치 프리미엄이 20%를 넘어선 날이 많았다. 김치 프리미엄 외에도 중국의 가상 화폐 투자자들이 한국 거래소를 이용하는 이유는 거래소에 대한 금융 당국의 통제가 없고, 가상 화폐 거래를 위한 계좌 개설이 쉬운 데다 외국환거래법상 건당 5000달러, 연간 5만달러까지는 증빙 서류 없이도 해외 송금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중국 당국은 가상 화폐 거래를 불법화한 상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불법 거래를 막기 위해 중국 송금 월 한도를 제한하는 등 자체적인 대응에 나섰지만 정부의 확실한 규제가 없어 역부족”이라며 “국내와 해외 거래소에 모두 계좌를 개설해야 하기 때문에 내국인들은 차익 거래를 하기 어렵고 중국 등 외국인들만 이득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치 프리미엄' 방치하면 상황 더 악화

현 상황에서는 이런 차액 조정이 불가능하다. 가상 화폐는 금융 자산으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공식적인 거래소가 없고, 민간 거래소 이용자들끼리 거래가 발생하는 구조여서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정부가 거래소를 양성화해 해외 거래소로부터 암호 화폐를 사올 수 있도록 해야 ‘김치 프리미엄'을 없앨 수 있고, 중국 등에서 들어오는 차익 거래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은 “가상 화폐 시장을 양성화해 주식시장처럼 규제하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김치 프리미엄을 이용한 중국인 등 외국인들의 차익 거래를 수년째 방치하고 있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치 프리미엄이 50% 이상 났던 2018년 초 1700억원을 불법 환전한 환전상과 중국인 가상 화폐 투자자들이 수사 당국에 적발된 적이 있지만, 정부는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김치 프리미엄

국내 가상 화폐 가격이 해외보다 높은 것을 표현하는 신조어다. 가상 화폐 가격은 거래소별로 다른데, 투자자가 몰리면서 국내 거래소의 가격이 해외 거래소보다 높은 상태다. 2018년 1월의 경우 국내 가격이 해외보다 50% 이상 높았고, 최근에는 10% 높은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