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컴 금거래소 5월에 오픈하는 거 맞죠? 관리자님 답 좀 해주세요.” “한컴그룹 2세가 최근 가상화폐 거래소 지분을 샀다는데 맞아요?”

지난달 30일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에 상장한 아로와나토큰의 공식 카카오톡 토론방에는 이런 문의 글이 꼬리를 물고 있다. “금 거래에 이용하겠다”고 만든 코인이지만, 금 거래소가 생기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코인은 한글과컴퓨터그룹 계열사인 블록체인 업체 한컴위드가 참여해 만들었다. 투자자가 몰려 상장 직후 상장가(50원) 대비 10만%에 달하는 5만원을 넘어서 시가총액이 15조원까지 올라 화제가 됐다. 그 뒤 폭락과 폭등을 반복하다 최근 8000원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시총은 4조원 정도인데 한컴(4700억원)의 약 8.5배, 한컴위드(3200억원)의 13배에 달한다.

가상화폐 시장이 과열되면서 코인 가격이 코인을 개발·발행한 회사의 시총을 크게 앞지르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배보다 배꼽이 훨씬 커져 버린 것이다. 한컴, 다날 등 코스닥 상장사나 티몬, 야놀자 같은 유망 스타트업이 참여한 코인은 이 회사들의 ‘이름값’을 보고 투자하는 이들이 많은데, 코인의 가치가 회사를 앞지르는 일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일러스트=김성규

◇포인트와 비슷, 코인 되자 2000% 상승

휴대폰 소액 결제 회사 다날이 결제에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든 ‘페이코인’은 지난해 가격이 200원 선이었는데 지난 한 달 새 가격이 2000% 넘게 급등했다. 페이코인은 일종의 포인트처럼 쓰이는데 그 시총이 약 7조8000억원으로 불어나 다날의 시총(5309억원)의 14배가 넘는 수준으로 커졌다. 시총이 140억원 정도인 판도라TV가 추진하는 이른바 영화 코인 ‘무비블록’은 올해 들어 가격이 크게는 하루에 40%씩 폭등해 시총이 1083억원을 넘어섰다.

상장을 추진 중인 전자상거래 업체 티몬이 발행한 테라는 백서에 “티몬에서 결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알리면서 투자자가 몰렸다. 아직 결제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았는데 시총이 7조3000억원까지 불어났다. 시장이 추정하는 티몬의 기업 가치(2조원)보다 코인의 가치가 3배 넘게 큰 수준으로 불어나 있는 셈이다.

◇코인 정보 담은 ‘백서' 엉망진창

이들이 코인을 상장하면서 공개하는 해당 코인의 ‘백서'가 불투명하고 허술하다는 점도 문제다. 투자자들에게 정보를 공개하는 내용이어야 하는데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고 있는 코인이 많다.

아로와나토큰의 경우 아예 “이 백서에 있는 내용은 정확하지 않을 수 있다”고 쓰여 있을 정도다. 핵심적인 내용인 개발자 이름을 두 차례나 바꾸기도 했다. 한국서 거래되는 코인은 백서에 코인 개발 관계자가 코인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는지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도 심각한 문제란 지적을 받는다. 코인 가격을 인위적으로 띄우고 계열사 등이 보유한 코인을 대량으로 매도해 암암리에 수익을 챙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국회 입법조사처 “주무 부처 지정 필요”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자문위원은 “블록체인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서비스 개발은 다른 나라에서도 이뤄지고 있지만 관련 코인이 통제받지 않고 상장돼 가격이 폭등하는 것은 매우 비정상적인 한국만의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 위원은 특히 “국내에서 ICO(가상화폐 발행 후 상장)가 금지돼 있어 싱가포르 등에서 이뤄지는 ICO 과정이 투명하지 않아 거래 부풀리기, 가격 부풀리기가 발생할 위험이 커서 당국의 통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런 상황이지만, 여전히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정부의 대책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10일 ‘가상자산 관련 투기 억제 및 범죄 피해자 보호 방안’이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투자자 보호를 위해 주무 부처를 지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정부는 2017년부터 금융위원회 등 10개 부처가 참여하는 느슨한 협의체를 만들어 대응하고 있는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