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백화점들이 미술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갤러리와 아트페어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지난해부터 현대백화점, 신세계백화점, 갤러리아가 작품 판매를 시작한데 이어 롯데백화점도 본격적으로 미술 시장에 뛰어들었다. 롯데백화점은 29일부터 제1회 ‘아트 롯데’를 연다. ‘원 마스터피스-나의 두 번째 아트컬렉션’을 주제로 본점 에비뉴엘과 잠실점 에비뉴엘에서 전시를 진행하면서 작품을 판매한다. 최근 소장가들에게 인기가 많은 이우환·박서보·김창열·윤형근·하종현·정상화 등 한국 현대 미술 작가의 작품 60여점이 출품된다.

백화점이 작품 거래를 하는 것은 갤러리처럼 작품 판매 수수료로 수익을 얻고자하는 게 아니다. 백화점에서 명품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면서 작품 소장에 관심이 있는 명품 소비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서다. 또 코로나 사태를 거치면서 온라인 상거래에 점유율을 뺏긴 백화점이 희소성 있는 상품을 판매하고 새로운 고객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방안으로 미술품 판매를 택한 것이다.

◇미술작품 내세워 명품 소비자 유인

신세계백화점은 지난 3월 열린 주주총회에서 ‘미술품 전시·판매·중개·임대업 및 관련 컨설팅업’을 사업목적에 추가했다. 지난해 8월 강남점을 리뉴얼하면서 3층에 해외 디자이너 패션 브랜드 매장과 함께 미술품을 전시, 판매하는 ‘아트스페이스’를 열었는데, 이를 백화점의 영업 활동으로 명시한 것이다. 명품 매장이 들어선 2층 복도 곳곳에 걸린 작품도 판매용이다.

미술작품을 전시, 판매하는 신세계 백화점 강남점. 3층 매장과 복도에 작품이 걸려있다.

현대백화점도 지난해부터 국·내외 작가의 작품을 판매하는 판교 아트 뮤지엄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200억원 규모의 데이비드 호크니, 요시모토 나라 등의 작품 150여점을 선보였다. 갤러리아는 5월과 6월 두차례에 걸쳐 갤러리와 협업 형식으로 해외 작가를 선정해 미술품을 판매했다. 5월에 판매했던 미국 작가 마이클 스코긴스의 작품은 첫날 11점 중 10점이 팔렸고, 결국 나머지 한 점까지 완판했다.

◇백화점은 희소성 높은 상품 팔아야

백화점이 미술품 거래에 나선 것은 최근 매출이 늘어난 명품 소비와 연관이 있다. 명품과 미술작품은 투자와 취향소비를 동시에 할 수 있단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백화점 관계자들은 명품 소비자들이 구매력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투자 목적으로 명품을 장만하는 소비자의 경우에 미술작품도 투자의 개념으로 사들일 수 있다고 본다. 미술작품을 전시·판매하면서 명품 소비자들의 발길을 붙잡겠단 것이다.

지난 5월 갤러리아 백화점에서 전시, 판매한 마이클 스코긴스의 작품. 전시 작품 11점 중 10점이 시작 하루 만에 팔렸다.

미술작품 판매가 명품관 중심으로 이뤄진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신세계 백화점 강남점은 명품매장이 많은 2~3층을 중심으로 작품을 전시·판매하고, 미술 작품을 판매하는 롯데월드 본점·잠실점 에비뉴엘과 갤러리아 압구정점은 모두 명품 전용관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들은 생필품은 온라인에서 사면서 명품이나 미술작품처럼 희소성이 강하고 가격대가 높은 작품은 오프라인에서 사는 경향이 있다. 매장에서 서비스를 받고 상품을 고르는 과정을 경험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최근 미술시장의 폭발적인 성장도 백화점의 작품 판매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지난해부터 주식, 부동산, 코인 등 투자 열풍이 불면서 그 바람이 명품에 이어 미술까지 번졌다. 지난 5월 13일부터 16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아트부산 2021’엔 8만 명이 들러 350억원어치의 미술품을 구매했다. 아트부산 역대 최다 관람객 기록이자, 국내 아트페어 사상 최대 판매액이다. 미술품 거래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자 백화점과 같은 새로운 유통 채널이 등장한 것이다.

백화점의 미술품 판매는 특히 명품 소비의 큰 손으로 떠오른 MZ세대를 겨냥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강남점에서 아트스페이스를 시작했을 때 구매자 중 40~50대가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올해 들어 30대가 크게 증가했다. 전시된 작품도 알렉스 카츠, 줄리앙 오피, 데이비드 호크니, 마크 스완슨 등 MZ세대에게 인기가 많은 작가 위주다. 서울 삼청동의 갤러리 관계자는 “기존 미술 시장의 중심인 중장년 컬렉터들이 갤러리나 경매와 같이 폐쇄적인 유통망을 선호했다면, 20~30대 컬렉터들은 아트페어나 백화점에서 발품 팔아 사는 것을 선호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