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호 하나은행장이 12일 ‘라울(Raul)’이라는 닉네임의 아바타(사진 앞줄 왼쪽에서 넷째)로 가상공간에 참여해 신입 행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하나은행은 인천 청라에 있는 하나글로벌캠퍼스 연수원을 본뜬 가상공간 연수원을 만들어 신입 행원 멘토링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하나은행

13일 하나은행은 온라인 가상 세계를 뜻하는 메타버스(metaverse) 플랫폼 ‘제페토' 속 연수원인 하나글로벌캠퍼스를 공개했다. 박성호 하나은행장은 ‘라울’이라는 닉네임의 아바타로 전날 열린 연수 수료식에 참석해 직원들의 기념 촬영 요청에 응했다. 김범진 고덕역지점 계장은 “라울과 셀카를 찍었다. 현실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연수를 받는 은행원과 지도하는 임원 등은 모두 가상 캐릭터와 닉네임을 만들고 연수장 곳곳을 돌며 은행원 수업을 받았다. 연수원 안내를 맡은 ‘레오’는 은행 인재개발부서 차장이었다.

코로나로 대면 서비스가 제한되고 신생 핀테크 업체들의 약진에 위협을 받는 시중은행들이 디지털 가상 세계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제페토 등 메타버스에서 교육이나 회의를 하고 소비자들을 위한 투자 설명회도 가상의 공간에서 진행하면서 가상의 세계로 속속 합류 중이다. 아예 은행원 자체를 인공지능(AI)으로 바꿔 대출 심사와 투자 상담을 맡기기도 한다. 하나·우리·SC제일은행과 DGB금융지주가 이달 들어 잇달아 메타버스 실험을 시작했다. KB국민·신한은행 등은 AI 은행원이 근무하는 지점을 만들 예정이다.

◇메타버스에 등장한 은행장들

메타버스는 가상을 뜻하는 메타(meta)와 현실 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다. 디지털과 실제 만남을 크게 구분하지 않는 MZ세대로부터(1980년대에서 1990년대 초반생인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 이후 출생한 Z세대) 인기를 끌며 이용자가 크게 늘고 있다.

권광석 우리은행장이 8일 가상 공간에서 진행된 ‘메타버스 타고 만나는 WOORI-MZ’ 행사에서 MZ세대 직원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지고 있다. 이날 권 행장은 ‘전광석화’라는 닉네임의 아바타로 메타버스에 접속했다. /우리은행

앞서 지난 8일에는 우리은행이 메타버스에 사무실을 차렸다. “안녕! 난 전광석화야. 나에게 궁금한 거 있나?” 사무실에 들어가면 만날 수 있는 전광석화는 권광석 우리은행장의 닉네임이다. 권 행장과 MZ세대 직원들이 만나는 행사인 ‘메타버스 타고 만나는 WOORI-MZ’를 메타버스에서 진행했다.

DGB금융지주는 7일 ESG 아이디어 공모전 ‘DGB With-U’ 시상식을 제페토를 통해 생중계로 진행했고, 5월엔 경영진 회의와 계열사 대표들이 참석한 그룹 경영 현안 회의도 제페토에서 열었다. SC제일은행은 사내 행사를 넘어, 메타버스 투자 설명회를 21일 열 계획이다. 미리 신청한 소비자들이 안내자 캐릭터인 ‘써니’를 따라 여러 공간을 옮겨다니며 설명회를 듣게 된다.

7일 DGB금융지주가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서 김태오 회장(오른쪽에서 여섯번째) 등이 참석한 가운데 ESG 아이디어 공모전 'DGB With-U' 시상식을 진행하고 있다. /DGB금융지주

은행들이 메타버스에 진출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미래 고객 확보를 위한 마케팅 효과를 위해서다. 금융은 규제가 까다로워 실제 상품을 팔기가 쉽지는 않지만, 메타버스의 주 사용자인 10~20대를 가상 공간에서 먼저 만나 은행에 친근함을 가져 주기를 바란다. 이동훈 KB금융지주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실명 확인이나 본인 인증 등의 장애물만 해결된다면 메타버스 내에서 국민은행의 모델이 직원으로 일하는 가상 점포를 개설하는 등의 다양한 사업 모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AI 은행원이 등장했다

13일 서울 국민은행 여의도 신관 지하 1층 AI 체험존에는 키오스크 속 가상 은행원이 일하고 있었다. 감색 정장 차림의 인간 모습인데 사실은 AI에 사람 모습을 입힌 사이버 인간이다. “적금 추천해주세요”라고 물어보았다. “직장인이세요?”라고 AI가 질문하기에 그렇다고 하자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을 한다. “1년 적금으로는 내맘대로 적금, 3년 적금으로는 직장인우대적금을 추천드립니다.”

13일 오후 서울 KB국민은행 여의도 신관 AI체험존에서 기자(오른쪽)가 AI은행원과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적금을 추천해달라"고 하자 AI은행원은 직장인인지 묻고 상품을 추천해줬다. /허유진 기자

이처럼 은행들은 대면 서비스를 점차 줄이는 대신 AI 은행원을 대거 도입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우리은행은 지난 5월부터 딥러닝 영상 합성 스타트업 ‘라이언로켓’과 함께 AI 은행원 개발을 진행 중이다. 지금은 딥러닝(심층 학습) 기술과 영상·음성 합성 기술을 통해 실제 특정 은행원의 외모, 자세 및 목소리를 배우고 있다.

신한은행은 오는 9월 서울 서소문·여의도중앙·홍제동·의정부점 등 수도권 40개 점포에 AI 은행원을 설치하고 내년 3월까지 도입 점포를 200개 내외로 늘릴 예정이다.

AI는 대출 심사도 한다. 하나은행의 ‘AI 대출’은 직원 대신 AI가 대출자의 신용도 등을 평가해 대출을 어떤 금리에, 얼마나 해줄지를 결정한다. 지난 6일 도입했다. 앱을 통해 신청하면 1분 안에 대출 한도와 금리가 나오고 실제 대출까지는 3분이 소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