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업계가 잇따라 고급 화장품 시장에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코로나 확산 이후 이른바 ‘보복소비’ 트렌드와 함께 명품 브랜드에 대한 수요가 늘자 화장품에서도 이런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브랜드를 내놓고 있는 것이다.

패션업계발 고급 화장품 경쟁의 선두에는 현대백화점그룹과 신세계그룹 등 유통 대기업이 자리하고 있다. 자체 유통망을 기반으로 각각 한섬과 신세계인터내셔날을 알짜 기업으로 키워나가고 있는 두 그룹이 이번에는 화장품에서 맞붙은 셈이다.

한섬이 내놓은 화장품 브랜드 ‘오에라’의 매장(위 사진)과 신세계인터내셔날의 ‘뽀아레’ 매장 모습. 현대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이라는 최고의 유통 수단을 가진 두 브랜드는 이달 각 백화점의 대표 점포라고 할 수 있는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과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 새 매장을 열었다. /한섬·신세계인터내셔날

한섬은 지난 27일 럭셔리 스킨케어 브랜드 ‘오에라’의 1호 매장을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에 열었다. 스위스의 맑은 물과 최고급 원료를 바탕으로 생산까지 스위스에서 한다는 컨셉트를 가진 이 브랜드는 주요 상품 가격이 20만~50만원대로 다른 브랜드에 비해 비싼편이다. 특히 ‘시그니처 프레스티지 크림’은 50ml 용량에 120만원대로 초고가 화장품이라 할 만하다.

이보다 앞서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지난 3월 글로벌 명품 브랜드를 표방하는 ‘뽀아레’를 10년간의 준비끝에 내놨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일찍이 해외 브랜드를 인수하거나 독점수입하는 형태로 화장품 사업을 키워오고 있었는데, 뽀아레를 계기로 더욱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겠다는 계획이다. 신세계는 2012년 색조 화장품 브랜드 비디비치를 인수하며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후 자체 브랜드 5개와 수입 브랜드 20여개를 운영하고 있다.

패션에서부터 경쟁해 온 두 회사가 화장품에서도 정면으로 맞붙은 셈이다. 두 회사는 비슷한 매출 규모를 보이며 경쟁관계에 있다. 한섬은 올 상반기에 6460억원 매출에 687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고,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상반기 매출 6826억원에 영업이익 478억원을 기록했다.

이처럼 패션 업계가 초고가 화장품 시장에 잇따라 진출하는 것은 우리나라 명품 시장이 어느 정도 성숙했다는 판단 때문이다. 의류 부문에서 명품 브랜드에 익숙해진 소비자가 화장품에서도 명품 브랜드를 쉽게 찾을 것이란 계산이 섰다는 것이다. 국내 의류 시장이 정체기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성장 돌파구가 필요하기도 했다.

최근들어 초고가 브랜드의 론칭이 부각됐을뿐, 사실 패션업체가 화장품 시장에 진출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LF는 2016년 프랑스 향수 브랜드 ‘불리 1803’을 국내 시장에 가져온 것을 시작으로 2019년 9월에는 남성 화장품 브랜드 ‘헤지스 맨 룰 429’를, 같은해 10월에는 비건 브랜드 ‘아떼’를 내놨다. 코오롱FnC도 작년 친환경 스킨케어 브랜드 ‘라이크와이즈’를 출시하고 올 4월 ‘엠퀴리’를 프리미엄 브랜드로 재단장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특정 브랜드의 수입에 주력하기 보다는 편집숍 브랜드 ‘레이블씨’를 만들면서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레이블씨는 깨끗한 화장품, 친환경 화장품들을 소비자에게 소개하겠다는 콘셉트로 해외 자연주의 브랜드를 국내에 들여오고 있다.

패션회사 뿐만 아니라 유통회사에서도 화장품 브랜드 육성은 놓치고 싶지 않은 시장이다. 특히 면세점의 경우 독점 판매 브랜드를 발굴해 소비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수단으로 십분 활용하고 있다. 롯데면세점은 작년 창립 40주년을 맞이해 아모레퍼시픽과 손잡고 단독 브랜드 ‘시예누’를 론칭했고, 신세계DF는 발렌티노뷰티·템버린즈 등 브랜드를 독점 판매하고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 관계자는 “화장품은 이미 패션업계에 중요한 성장동력으로 자리매김했다”며 “지속적인 투자와 성장 가능성 높은 브랜드 발굴, 자체 브랜드 육성 등을 통해 국내는 물론 글로벌 뷰티 시장에서 당당히 경쟁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