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회사원 김모(40)씨는 작년 9월 서울 서대문구에 11억원짜리 아파트를 구입해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뤘다. 김씨는 “문재인 정부 들어서고 부동산 잡는다더니 집값이 뛰어 내 집 마련을 망설였는데, 이러다 영영 못 살 것 같아 진짜 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받아서 집을 샀다”고 말했다.

김씨처럼 지난해 무주택자에서 유주택자가 된 사람이 100만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통계청이 16일 발표한 ‘2020년 주택소유통계’에 따르면, 11월 1일 기준으로 2019년에는 무주택이었는데 지난해에 1채 이상 주택을 보유하게 된 사람이 98만명이다. 1채를 구입한 사람이 94만1000명(96%)이었고, 3만9000명(4%)은 1년 새 2채 이상의 집을 샀다.

무주택자에서 유주택자가 된 사람의 숫자는 관련 통계가 첫 작성된 2017년 98만1000명이었고, 2018년 85만8000명, 2019년 83만2000명으로 2년 연속 줄어들다 지난해 처음으로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대출 규제와 과세 강화에도 집값이 계속 오르는 상황이 이어지자 이른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로 내 집 마련에 나선 사람이 늘어났다고 분석한다.

◇자녀에게 증여, 부부 공동 명의 등도 영향

부모와 자식 간 주택 증여와 부부 공동 명의 내 집 마련이 늘어난 것도 신규 유주택자가 작년 들어 늘어난 요인으로 꼽힌다. 서울 서초구의 한 세무사는 “종합부동산세 부담에 갖고 있는 집을 처분하려는 60대 이상 부모들 사이에서 ‘가격이 오를 집을 남에게 파느니 자식에게 물려주자’는 마음으로 증여를 하는 경우가 작년 들어 크게 늘어났다”고 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작년 주택 증여 건수는 15만2427건으로 역대 최다치를 기록했다. 2019년(11만847건)보다 37.5%(4만1580건) 증가했다.

2019년에는 유주택자였다가 무주택자가 된 사람은 33만7000명으로 2019년(42만4000명)보다 8만7000명 줄었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무주택자가 된 사람들 사이에는 증여로 무주택자가 된 부모, 경제적 어려움으로 집을 처분한 경우, 집값보다 주식 등 다른 자산 가격 상승세가 더 클 것이라고 판단한 경우 등이 섞여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부부 공동 명의로 주택을 구입하는 비율이 늘어난 것도 유주택자가 늘어난 이유 가운데 하나라는 게 통계청 설명이다. 통계청 관계자는 “무주택자였던 부부가 배우자 중 한 명 명의로 집을 사면 1명으로, 부부 공동 명의로 집을 사면 2명으로 집계된다”고 했다. 작년 기준 개인이 보유한 주택 수는 1596만8000호로 이 가운데 13%인 207만9000호가 부부나 형제 등의 공동 명의로 돼 있다. 2012년 9.6%였던 공동 명의 주택 비율은 매년 꾸준히 늘어 2019년 12.5%에 달했고, 작년 들어 0.5%포인트 더 늘었다.

◇“정부 규제에도 집값 안 떨어지더라”

김광석 실장은 “규제가 집 사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맞지만 집값을 떨어뜨리진 않는다는 학습 효과가 국민들 사이에서 퍼진 것 같다”고 말했다.

유주택자 증가세는 올해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물가 상승률을 고려한 서울 아파트의 실질 가격이 과거 고점에 근접했다”며 집값 하락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기획재정부는 지난 8월 내년 국세 수입 예산안을 편성하면서 수도권은 5.1%, 지방은 3.5% 집값이 상승할 것이라는 국토연구원의 전망치를 이용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0월 기준 주택가격전망 소비자동향지수(CSI)는 올해 125로 작년 10월(122)보다 3포인트 올랐다. 이 지수가 100보다 높을수록 집값 상승을 예상하는 가계가 많다는 뜻이다. 10월 주택가격전망 CSI는 2016년 114에서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7년 110으로 내려갔다가 2018년부터 4년 연속 상승했다.

반면, 서울과 세종시 등 집값이 많이 오른 지역에서 미분양 등이 늘어나면서 집값이 하락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의 대출 규제와 공급 증가 등으로 집값 오름세에 일단 제동이 걸렸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