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청주시 오창읍에 있는 시스템반도체 후공정(後工程) 전문기업인 네패스. 이 회사는 올해 6월 미국 백악관이 발표한 250쪽 분량의 ‘반도체 산업 종합 보고서’에 이름을 올렸다. 독보적인 첨단 패키징 기술로 삼성전자, TSMC, 인텔 등과 함께 ‘핵심 제조기술을 가진 반도체 기업 10곳’에 선정된 것이다. ·

이달 16일 기자가 찾아간 회사는 여느 회사들과 달랐다. 각층마다 ‘당신은 슈퍼스타입니다’라는 간판이 있고, 마주치는 임직원들은 서로 ‘슈퍼스타!’라며 인사했다.

이달 16일 오전 충북 청주시 오창읍에 있는 네패스 오창2캠퍼스 본관 1층 모습/송의달 기자

일과 시작 전인 매일 오전 8시30분부터 30분동안은 회장부터 신입 사원들까지 모두 노래를 부른다. 코로나 팬데믹 전에는 강당 등에 모였으나 요즘은 자기 자리에서 귀에 이어폰을 꼽고 가창(歌唱)한다.

네패스 임직원들이 매일 아침 업무 시작전 노래를 부르는 네패스 오창 2캠퍼스 강당/송의달 기자

◇매일 아침 30분 노래 부르고 감사편지 7통

진풍경은 더 있다. 모든 사원들은 매일 아침 스마트폰에서 ‘마법 노트’라는 앱(app)을 열어 7통의 감사 편지를 쓴다. 일주일 중 하루는 노래 부르는 시간에 95개 소그룹으로 나뉘어 지난 한주 동안 읽은 책 내용과 회사 적용 방안을 놓고 얘기한다. 또 매일 업무 개시 전에 책상 앞에 붙어있는 ‘삶을 바꾸는 아침 첫 생각’ 이란 글자판을 읽고 마음을 다잡는다. 모든 임직원들이 매일 습관처럼 자연스럽게 하는 의식(儀式)이다.

네패스 모든 임직원들이 아침마다 읽는 '네패스 아침생각'/네패스 제공

또 업무 중 회의 시작 전에 수시로 노래를 부르며, 회의를 마칠 때는 ‘예상치 않은 일이 생겨 감사하자’와 같은 ‘네페스 감사진법’(感謝進法)을 복창(復唱)한다.

이병구(75) 네패스 회장은 이를 “4차원 경영이 살아 숨쉬는 현장”이라고 했다. 2003년 시작한 ‘음악 경영’을 비롯해 ‘독서 경영’, ‘감사편지’ 등을 그는 10년 넘게 줄기차게 하고 있다. 회사는 대한민국 독서 경영 우수직장으로 인증됐다. 한국경영학회의 ‘강소(强小) 기업가상(賞)’과 ‘한국경영대상 특별상’도 받았다. 이달 16일 낮 충북 괴산 네패스 청안공장에서 이 회장을 만났다.

이병구 네패스 창업자 겸 대표이사 회장. 이화여대 경영대 겸임교수를 지냈고 '대한민국 강소기업가 상'을 받았다./네패스 제공

◇“사원들 삶의 태도 바뀌면 회사 절로 잘 돼”

- 회사 분위기가 독특하다. 그 기준이 되는 ‘4차원 경영’은 무엇인가?

“삶의 태도를 변화시켜 성장함으로써 경영 성과와 자기실현을 모두 이루자는 것이다. 3차원 경영이 ‘돈’을 중심에 두고 ‘사람’은 도구로 여긴다면, 4차원 경영은 사람을 가장 중시하는 ‘사람 먼저’(People-first)라는 게 다르다.”

- 서로를 ‘슈퍼 스타’라고 부르는데.

“상대방을 높여주고 자신은 낮추자는 취지에서다. 인간 관계의 파탄은 불필요한 자존심과 상대방에 대한 배려 부족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높여주면 자기 자신도 높아진다.”

충북 청주 오창읍 소재 네패스 오창2 캠퍼스에 있는 클린 룸(clean room) 모습/네패스 제공

- 회사가 ‘말’[語]을 매우 중요시하는데 어떤 이유에서인가?

“사람은 감정에 많이 좌우되는데, 감정을 가장 확실하고 빠르게 바꾸는 게 ‘말’이다. 사내에서 가장 많이 쓰는 10가지 말을 골라 긍정의 말로 바꿨더니 그것만으로도 회사 분위기가 아주 좋아졌다. ‘보고해’는 ‘공유해 주세요’, ‘뭐가 문제인데?’는 ‘개선할 점은 무엇인가요?’로 쓴다. 존중하는 의사소통으로 말로 인한 상처가 사라졌다.”

이 회장은 “직급이 아무리 높아도 거친 말을 하거나 갑질을 하면 즉각 퇴출시킨다”며 “회사 이름을 정할 때도 ‘말’의 중요성을 염두에 두고 지었다”고 했다. 네패스(NEPES)는 히브리어로 ‘영원한 생명’이란 뜻이다.

네패스 오창2캠퍼스 본사 정문 입구에 있는 현판에 네패스의 사명(mission), 비전(vision), 핵심 가치(core values) 등이 적혀 있다./송의달 기자

◇“겸손과 감사를 매일 생활화해”

- 사원들이 하루에도 여러번 보고 새기는 ‘n가족 행동 규범 10계명’(戒名)에 ‘겸손하고, 겸손하고, 또 겸손한 자세로 일하자’는 구절이 인상적이다.

“경영자와 사원들이 서로 겸손한 마음과 자세로 자존감을 살려주는 게 좋아서다. 회사가 직원을 존중하지 않으면 그들은 열정과 성실을 다할 수 없다. 직원들 역시 회사를 존중하지 않게 된다. 회장인 나부터 회사 승용차를 타고 내릴 때, 임직원 어느 누구도 열어주지 못하게 하고 내가 스스로 한다.”

네패스(n) 가족이 실천하고 있는 10가지 행동 규범/네패스 제공

◇“네패스 5년 다니면 품격 다른 사람 된다”

- ‘행동규범 10계명’ ‘감사진법’ 등을 외치면 사람이 달라지나?

“4차원 경영은 ‘사람의 마음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구체적으로 ‘생각’(thinking)과 ‘말’(word), ‘일’(work)에 대한 태도 변화다. 사람은 하루 5만가지 생각을 하는데, 75%가 부정적인 생각이라고 한다. 마음판에 어떤 생각을 담고 새기느냐가 중요하다. 네패스에 5년 정도 다니면 품격이 다른 사람이 된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그는 “마음 근육 단련을 위해 회사 전체가 하루 3가지 이상씩 좋은 일을 동료들과 나누고, 하루 3곡 이상 노래를 부르며, 하루 30분 이상 책을 읽고, 하루 7가지 이상 감사편지를 쓰는 ‘3·3·7 라이프’를 실천 중”이라고 했다. 또 “서로 능력 차이를 인정하며, 도와주고 채워주는 ‘네이버스 러브(neighbor’s love)’가 충만한 회사, 높은 학벌보다 겸손한 인재들이 협력하는 회사를 지향한다”고 덧붙였다.

네패스는 회사 생활에서 모든 사원들이 '감사'와 '겸손'을 반복적으로 실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회사에 붙어 있는 '평생감사' 액자/송의달 기자

- 4차원 경영의 토대는 ‘성경(聖經)’라고 책에 밝혔다.

“그렇다. 일본에서 ‘경영의 신’(神)으로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稲盛和夫) 회장은 불교 경영을,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는 논어(論語) 등에 입각한 유교 경영을 했다. 나는 기독교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경영관을 갖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 신자가 아닌 사람도 제약없이 입사한다. 종교에 따른 차별도 없다.”

◇“힘들고 어려워도 감사하면 길 열리더라”

-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한 경영이라면?

“‘약함이 강함을 이긴다’ ‘선(善)으로 악(惡)을 이겨라’ ‘어려움이 곧 기회다’라고 생각하며 임한다. 성경적 사고와 통찰력으로 ‘비대칭 경영’을 한다. 눈앞의 어려움을 윗선[上線]에서 보면 담대해진다. 어려움과 고난이 올수록 더 감사하며, ‘신적(神的) 개입’(Divine intervention)을 믿는다.”

이 회장은 “창업후 10년 마다 한번 꼴로 큰 위기를 맞았으나 여기까지 온 것 자체가 누군가의 계획과 섭리에 의한 기적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서울 서초동 사랑의교회 출석 교인(敎人)인 그는 ‘사랑글로벌아카데미’(SaGA) 후원이사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 회장은 2015년에는 <경영은 관계다>, 2018년에는 <석세스 애티튜드-4차원 경영>이라는 경영 저서를 냈다.

작년 12월에는 미국 아마존을 통해 2018년 책의 영문판인 <An Attitude of Success-Four Dimensional Management>를 출간했다. 이 책은 일주일 여만에 아마존 도서 가운데 기업 윤리 분야 1위, 기독교 신앙 분야 2위에 오르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병구 회장이 미국 아마존을 통해 출간한 영문판 <An Attitude of Success-Four Dimensional Management>/아마존 캡처

- 영문판을 낸 특별한 이유가 있나?

“2년 전 가동을 시작한 필리핀 마닐라 공장에 현지 근로자 350명의 생산성 향상과 회사 소속감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그들에게 네페스 웨이(NEPES Way)를 공유하기 위해서 한글 책을 완역(完譯)했다. 뜻하지 않게 베스트셀러가 된 것도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곁눈질 않고 본업에만 30년여 집중”

- 부동산 투자 등을 하지 않고, ‘불로(不勞)소득’도 거부한다고 들었다.

“사업에 뛰어든 이후 부동산이나 주식, 펀드 투자하라는 권유를 숱하게 많이 받았다. 그러나 곁눈질하지 않고 본업(本業)만 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 IMF 경제위기 때 환율이 크게 뛰어 가만히 앉아 매출이 두배로 불었었다. 당시 공짜로 늘어난 금액은 종업원들에게 보너스로 모두 나눠줬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팬아웃 웨이퍼 레벨 패키징(FOWLP)를 상용화한 네패스는 첨단 반도체 패키지 PLP 사업화에도 성공, 이달 7일 충북 괴산군에 첨단 PLP 패키지 공장을 준공했다. 투자 금액만 2200억원에 달했고, 1000명이 넘는 신규 고용을 창출했다. 네패스는 인간의 두뇌를 모방한 ‘뉴로모픽 칩’을 업계 최초로 양산(量産)하고 있다.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왼쪽 네 번째)과 이병구 회장 등이 2021년 12월 7일 충북 괴산첨단산업단지내 네패스 청안캠퍼스에서 열린 첨단 패키징 공장 준공식에서 테이프커팅하고 있다./산업통상자원부 제공

◇“사원들이 ‘일의 맛’을 느끼는 회사는 성공한다”

- 남다른 경영관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

“LG반도체 생산기술센터장을 그만 두고 1990년 회사를 세운 후 매출 100억원, 인원 100명을 넘을 무렵부터 기술로 제품 만들어 파는 게 사업의 전부가 아님을 깨닫게 됐다. 사업에서 기술이 차지하는 비중은 20~30%이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더 중요하다. 사원들이 자기가 하는 일을 통해 ‘일의 맛’을 느끼면, 그 회사는 반드시 성공한다.”

그는 “네패스는 전체 임직원의 80%가 40세 미만인 젊은 회사인데 우리는 이익금의 30%는 종업원 보너스, 30%는 주주 배당, 40%는 회사 유보로 분배한다”며 “사원들의 능력 극대화 등을 겨냥해 고과(考課)평가는 ‘상대 평가’ 아닌 ‘절대평가’로 100% 하고 있다”고 했다.

네패스의 매출액은 최근 2년간 3400억~3500억원에 머물렀으나 올해 4164억원대로 20% 넘는 성장이 유력하다(에프앤가이드 추정). 올들어 3분기까지 총매출액의 14%를 연구개발(R&D)에 지출해 국내 IT기업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네패스가 세계적인 독보 기술로 만드는 시스템반도체 후공정 제품들/송의달 기자

◇“AI 반도체 칩 분야서 세계적 선도 기업될 것”

- 30년 넘게 사업하면서 힘든 점이 있다면?

“가정이나 기업, 국가 모두 좋은 전통은 계승하고 축적, 발전시켜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기업 경영 승계가 너무 힘들다. 유럽에선 200~300년 된 장수 기업이 수두룩하다. 일본반도체 기업들의 몰락은 오너 경영이 사라진 상황에서, 전문 경영인들이 단기 실적 위주 경영을 한 탓이 크다. 부(富)의 대물림과 승계를 큰 그림에서 봤으면 한다.”

- 금융·증권업계는 어떤가?

“금융사나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기업의 과거 실적과 현재 가치만 주목하고 있는 게 안타깝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미국 전기차 기업 테슬라(Teslar)처럼, 과거 실적은 없어도 성장성 높은 기업이 클 수 없다. 스타트업 생태계가 활성화되려면 금융에서 혁신적인 발상이 필요하다.”

- 네패스의 향후 비전은?

“시스템 반도체 후공정 분야에서 글로벌 탑 티어(top tier) 지위를 유지하고, 인공지능(AI) 반도체 칩 분야에서 세계적 선도(先導) 기업이 되는 것이다. 올해 그룹 전체 매출액은 5000억원 정도를 예상한다. 4년 후인 2025년에는 약1조5000억원 매출을 달성하는 게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