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독일 사업 철수 발표를 한 니클라스 외스트버그 딜리버리히어로 최고경영자(CEO)/딜리버리히어로

한국의 ‘배달의 민족’을 인수한 독일 기업 ‘딜리버리히어로’가 자국에서 사업을 철수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2일 딜리버리히어로가 프랑크푸르트 등 독일 6개 도시에서 ‘푸드판다’라는 브랜드로 제공하던 음식 배달 서비스를 중단하고 베를린에서만 시험 서비스를 유지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딜리버리히어로는 2019년 독일 사업을 매각했다가 지난 5월 독일에 재진출했는데 7개월 만에 항기를 든 것이다. 전세계 50국에 진출한 음식 배달 서비스 업계의 강자는 왜 유독 자국에서 실패하는 것일까.

이코노미스트는 11일 독일이 ‘음식 배달 서비스의 험지’가 된 이유에 대해 엄격한 노동법, 강력한 노조, 높은 비숙련 노동자 임금, 인색한 고객 문화를 들었다. 배달 노동자를 과도하게 보호하는 정책이 배달 원가 상승과 인력 수급난을 유발하고, 소비자는 배달 서비스에 높은 가격을 지불할 의향이 없는 탓에 배달 업체들이 고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유럽연합(EU)에서 건수에 따라 돈을 버는 ‘긱 이코노미(gig economy·임시직 경제)’ 종사자들에게 플랫폼 기업들이 정규직에 준하는 대우를 하도록 강제하는 근로법 제정이 추진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하며 “독일의 배달 서비스 업체들의 미래가 더욱 험난해졌다”고 했다.

니클라스 외스트버그 딜리버리히어로 최고경영자(CEO)도 지난 10일 트위터에 작심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독일에서는 배달 기사를 구하기 어렵고, 관련 법은 지속 가능하지 않아 체계적인 배달업의 정착을 막고 있다”면서 “한국에서는 매달 1억 2000만건의 배달이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는 반면, 독일에서는 겨우 200만건만이 배달되고 있다. 이런 숫자가 현실을 정확하게 보여준다”라고 했다. 그는 “독일의 배달 기사들 뿐 아니라 정부 또한 경제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고 비판했다.

니클라스 외스트버그 딜리버리히어로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10일 트위터에 남긴 말./트위터 캡처

올해 독일에서 음식 배달 서비스 업체들 간의 경쟁이 치열해진 것도 딜리버리히어로의 철수를 앞당겼다는 분석이다. 미국계 우버이츠, 핀란드계 월트 등이 잇따라 독일 시장에 새로 진출했다. 금융회사 케플러쇠브뢰(Kepler Cheuvreux)는 최근 “딜리버리히어로가 독일에서 사업을 영위하려면 2022년에 1억 2000만 유로(약 1600억원)를 현지 판매와 마케팅에 투자해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게다가 딜리버리히어로는 더 이상 적자를 보며 사업을 키울 수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딜리버리히어로의 올해 상반기 적자는 9억1800만 유로(약 1조2600억원)로 전년의 두배 수준이다. 국내의 한 음식 배달 서비스 업계 관계자는 “딜리버리히어로는 지금껏 수익 증대보다 주문 건수를 늘리는 데 집중했던 기업”이라면서 “그러나 이제는 주주들로부터 실질적으로 수익을 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딜리버리히어로는 향후 아시아 사업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절반 이상의 매출이 한국 등 아시아에서 나오고 있는데다,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의 배달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딜리버리히어로는 2012년부터 한국에서 ‘요기요’ 서비스를 시작했고, 2019년 12월 ‘배달의 민족’을 인수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요구 조건에 따라 지난 10월 요기요를 GS리테일과 사모펀드 컨소시엄에 매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