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서울 용산구 용산용문전통시장. ‘가가호호’ 반찬가게에 들어서니 반찬보다 켜켜이 쌓인 택배 상자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사장 김선미(40)씨는 “온라인 스토어 주문이 쏟아져 택배 포장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원래 가게에서 김치를 담갔는데, 판매량이 늘어 따로 공간을 마련했다”고 했다. 이날 가게를 찾은 주부 전모(49)씨는 “시장에서 직접 장을 보기도 하지만 바쁠 땐 여러 종류의 김치를 온라인이나 앱에서도 살 수 있어 편리하다”고 했다.

지난 23일 서울 용산용문전통시장에서 용문닭집 사장 임홍순씨가 ‘캠핑용 닭갈비 밀키트’를 바구니에 담아 들어보이고 있다. 주문이 들어오면 생닭을 닭갈비용으로 손질해 진공 포장하고, 다른 야채와 소스를 더해 간편히 조리할 수 있는 세트로 만들어낸다. 젊은 상인들이 온라인 판매와 고품질 밀키트로 새 판로를 열면서 쇠락하던 시장이 활기를 찾았다. /김연정 객원기자

용산용문시장은 1948년부터 서울 마포와 용산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한 전통시장이다. 70년 넘는 전통의 용산용문시장은 수년 전까지만 해도 다른 전통시장처럼 쇠락하는 시장이었다. 코로나까지 겹쳐 상인들 어려움이 심했다. 이런 시장이 요즘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비결은 ‘온라인’이었다. 젊은 상인들이 주축이 돼 온라인에서 물건을 팔고, 서로 상품을 결합해 온라인 전용 고품질 밀키트를 선보이면서 매출이 늘어난 것이다. 박가나 용문시장 육성사업단장은 “코로나 때문에 시장을 직접 찾는 손님은 줄었지만, 온라인 판로 덕분에 코로나 이전보다 더 많은 매출을 내고 있다”고 했다.

◇젊은 상인 주축으로 ‘온라인 진출’

작년까지만 해도 이 시장에서 온라인으로 물건을 판 곳은 가가호호 반찬가게 1곳밖에 없었다. 사장 김선미씨는 독학으로 공부해 네이버·위메프 등 온라인 플랫폼에서 김치 등 반찬을 팔아왔다. 하지만 코로나 탓에 시장 매출이 급감하자, 젊은 상인들이 나서서 “온라인 판매로 살길을 뚫어보자”며 변화를 이끌었다.

상인들은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전통시장 육성 사업을 신청해 온라인 판매 방법을 차근차근 배웠다. 사진 전문가한테서 먹음직스럽게 음식 사진을 찍는 방법을 배웠다. 매장 한쪽에 간이 스튜디오도 설치했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시장을 한번 찾았던 고객들은 품질에 만족하며 마음 편히 온라인 주문을 했고, 새로운 고객들도 늘었다.

용산용문시장 상인들의 도전은 온라인 판매에서 끝나지 않았다. 대기업이 장악한 ‘밀키트(간편 조리식)’에도 도전했다. 가가호호 반찬가게 김치와 정육점 ‘백정윤자’의 한돈 생오겹살을 합쳐 밀키트로 팔았다. 지난 8월엔 하루 100개 이상, 240만원 매출을 올렸다. ‘용문닭집’은 채소와 소스를 더한 ‘캠핑용 닭갈비’를 밀키트로 만들어 팔았다. 용문닭집 임홍순 사장은 “코로나 때문에 손님이 줄어 걱정이 많았는데, 라이브 커머스 방송을 한번 하고 나니 눈코 뜰 새 없을 정도로 주문이 밀려들었다”고 했다.

◇연로한 상인들도 앱으로 ‘안주 세트’ 판매

처음 용산용문시장 토박이 상인들은 온라인 판매에 시큰둥했다. “사람이 북적북적해야 시장이지 온라인이니 플랫폼이니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이게 시장이냐”는 얘기였다. 하지만 젊은 상인들 중심으로 상품 관리와 배송을 업그레이드하고, 전통시장 배달 앱 ‘놀러와요 시장(놀장)’을 통해 매출이 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인터넷 판매에 익숙하지 않은 상인들도 ‘놀장’을 통해 참여했다. 과일가게는 샤인머스캣, 사과, 배를 모아 ‘과일 패키지’를 만들어 팔고, 건어물 가게에선 견과류와 쥐포로 ‘안주 세트’를 구성해 올렸다. 지난 3월 이 시장의 놀장 매출은 517만원이었지만, 상품 관리와 배송 촉진이 이뤄지면서 지난 9월 매출은 3229만원으로 뛰었다.

‘온라인 용산용문시장’은 오늘도 업그레이드 중이다. 숙명여대와 협업해 밀키트를 개발하고, 라이브 커머스 방송도 여러 상점으로 확대하고 있다. 상인회는 온라인 배송 상품이 변질하는 것을 막고 입출고를 철저히 관리하기 위해 지난달 ‘온라인 배송 서비스 센터’도 열었다. 박가나 사업단장은 “시장 내 150여 점포 중 절반 정도가 온라인 판매를 하고 있다”며 “판로를 새로 개척하자 나이를 불문하고 모든 상인이 의욕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