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제은행(BIS)의 CBDC(중앙은행 발행 디지털 화폐) 이미지/BIS

한국은행은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를 뜻하는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를 발행해 유통하는 실험에 성공했다고 24일 밝혔다. CBDC는 무형의 온라인 화폐로서 국가의 화폐 단위를 그대로 사용한다. 은행 계좌가 필요한 모바일이나 온라인 결제와 달리 개인 간 전자지갑(디지털 화폐 저장 프로그램)을 통해 돈을 바로 주고받을 수 있다.

각국 중앙은행들은 현금 사용 감소,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과 같은 시대적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CBDC 연구에 속도를 내고 있다.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자산에 맞서 독점적인 화폐 발행기관으로서 권위를 수성해야 한다는 차원에서도 중앙은행들은 CBDC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국제결제은행(BIS)의 관련 실태 조사에 응한 65국 중앙은행 가운데 86%가 CBDC에 대한 연구 내지 검증을 진행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한은 1단계 실험에서 발행·유통 성공

지금도 대부분 현금을 들고 다니지 않기 때문에 CBDC가 어떤 점에서 신용카드나 모바일 결제, 온라인 뱅킹과 다른지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다. 현재의 금융결제는 모두 중간에 은행이나 카드사 같은 금융회사를 거쳐야 한다. 은행에 계좌를 갖고 있어야 하고 계좌에 담긴 예금을 기반으로 거래되는 식이다.

하지만 CBDC는 은행을 비롯한 금융회사를 중간에 거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결정적으로 다르다. 개인과 기업 사이에 또는 개인끼리 전자지갑에서 CBDC를 보내주고 받으면 된다. 지폐 1만원권을 개인끼리 건네는 것과 똑같이 중앙은행이 발행한 디지털 화폐를 주고받는 것이다. 모바일·온라인 결제는 누가 거래하느냐에 따라 신용도에 의해 결제할 수 있는 액수 등의 제약이 있고 어떤 경우는 아예 결제가 막히기도 한다. 하지만 CBDC는 신용도와 무관하다는 특징이 있다.

한은은 향후 원화로 된 CBDC를 도입하게 될 경우에 대비해 먼저 기술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지 타진했다. 지난해 8월부터 제조·발행·유통에 이르는 1단계 실험을 진행해본 결과 모두 정상적으로 작동했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올해 상반기에는 결제에 초점을 맞춘 2단계 실험을 진행한다. CBDC로 NFT(대체불가능토큰)나 디지털 예술품을 구매해볼 예정이다. 국가 간에 CBDC를 송금할 수 있는지도 살펴볼 계획이다. 또 인터넷 연결이 안 되는 상황에서 근거리무선통신(NFC) 기술로 송금이 가능한지도 점검한다. 유희준 한은 디지털화폐기술반장은 “통신사 장애나 자연재해로 민간의 지급결제 기능이 마비될 때 실물 화폐와 함께 지급수단으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중국이 앞서가고 미국·유럽 뒤쫓아

한은은 “현재로서는 CBDC를 발행할 계획은 없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CBDC를 연구하는 전담팀을 만들고 실험을 전개하는 이유는 다른 나라들이 CBDC 체제로 급속하게 전환할 때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현재 CBDC를 정식으로 통용하는 나라는 바하마, 나이지리아, 동카리브해 7국 연합 등이다. 하지만 이런 나라들은 온라인 지급 결제 능력이 부족해 대안으로 사용하는 성격이 강하다. 주요국 중에서는 중국이 앞서가고 미국, EU(유럽 연합) 등 선진국이 뒤쫓아가는 형국이다.

중국 인민은행은 2020년부터 선전, 쑤저우 등 10여 개 도시에서 시민들로 하여금 ‘디지털 위안화’로 부르는 CBDC를 사용하게 하는 시범 운영을 하고 있다. 디지털 위안화 전자지갑을 개통한 사람은 2000만명을 넘겼고, 디지털 위안화 결제가 가능한 외식·교통·쇼핑 등 서비스 업체는 130만곳 이상이다. 중국은 다음 달 열리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디지털 위안화를 본격적으로 상용화하는 계기로 삼을 예정이다.

이에 맞서 미국 연방준비제도도 지난 20일 40쪽짜리 ‘디지털 달러’ 보고서를 발간했다. 아직은 디지털 달러의 장단점을 연구한 정도지만, 앞으로 4개월간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의견을 청취할 예정이다.

한은은 “모든 중앙은행이 CBDC를 도입할 것이라고 단언하긴 어려우며 실제 발행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관련 기술이 나라마다 제각각이며, 국제적으로 통일된 표준이 없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또한 중앙은행이 모든 거래 정보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른바 ‘빅브러더’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