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 청사/위키피디아

공정거래위원회가 당근마켓 규제에 전자상거래법을 적용하려고 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1990년대 초반 만들어진 낡은 개념을 플랫폼 기업에 적용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것이다. 이 법에 있는 통신판매중개업자의 의무는 소비자의 자택에 상품 판매 카탈로그를 보낼 경우를 상정하고 만들어진 것이라서다.

◇ 작년 전자상거래법 개정안 통과 부진하자 당근마켓에 과거 조항 무리한 적용… 판매자 인적 사항 구매자에게 통보하라?

17일 국회와 공정위에 따르면, 공정위는 작년 3월 입법예고한 전자상거래법 전부개정안 국회 통과가 지지부진하자 국회 통과에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당근마켓 등 플랫폼 기업에 현행법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개정안은 당근마켓 같은 플랫폼 사업자가 개인 판매자의 성명·주소·연락처 등의 정보를 수집하게 하고 판매자와 소비자 간에 분쟁이 발생하면 그 정보를 소비자에 제공하도록 하는 게 골자다. 이렇게 되면 당근마켓 중고 거래 시 판매자의 개인 정보를 구매자에게 알려야 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당근마켓은 회원 가입 시 살고 있는 동네와 휴대폰 번호만 입력하게 하고 있다. 휴대전화 본인 인증도 하지 않는다. 당근마켓 측은 “간단한 회원 가입으로 성공한 사업 모델이기 때문에 공정위의 개정안은 사실상 당근마켓의 사업 모델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반발하고 있다.

휴대전화 번호만으로도 판매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수사 기관이 충분히 수사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입법예고 직후 정부기관인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개정안은 개인정보 보호 관점에서 적절하지 않다”며 제동을 걸었고, 법안은 국회에서 공전 중이다.

◇90년대 법으로 플랫폼 비즈니스 규제

법안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 공정위는 현행 전자상거래법상 통신판매중개업자의 의무 규정을 당근마켓 등에 적용할 방침이다. 현행법은 중개업자가 상품 구매자에게 판매자의 정보를 제공하도록 한다. 판매자의 성명·주소·전화번호 등을 소비자에게 제공해야 한다. 전자상거래법은 2002년에 만들어진 법이다. 특히, 통신판매중개업자 개념은 1990년대 초반에 만들어진 ‘통신판매업’을 토대로 한 것이다. 카탈로그를 소비자의 집으로 보낼 때 카탈로그에 실린 상품의 판매자 정보를 제대로 표기해야 한다는 것을 가져 온 것이다. 전문가들은 “현행법은 카탈로그를 통해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할 때 적용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병준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는 “당근마켓은 통신판매중개업자가 아니다”며 “플랫폼으로 사고 팔 사람만 만나게 해주고 실제 계약 체결은 당사자들이 하기 때문에 이 조항을 적용하기 어렵다”고 했다.

◇플랫폼 시장 규제 밥그릇 챙기기

공정위의 무리수는 플랫폼 시장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두고 규제권을 선점하려는 일종의 ‘밥그릇’ 챙기기라는 지적을 받는 형편이다. 플랫폼 시장이 새로 생기면서 공정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등이 규제 권한을 차지하려고 각축을 벌인다는 것이다.

작년 7월 방통위가 ‘구글 갑질 방지법안’으로 불리는 ‘구글 인앱결제 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하고, 이 법안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를 통과하자 공정위는 공정거래법과 중복 규제라며 반발한 것 등이 이런 현상을 보여주는 사례다. 공정위 관계자는 “방통위가 인앱결제를 먼저 치고 나오면서 공정위 내부에선 ‘선수를 뺏겼다’는 위기감이 팽배해졌다”고 전했다.

2019년 9월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취임한 이후 ‘디지털 공정경제’라는 화두를 준비 없이 꺼내들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플랫폼 업계 관계자는 “유럽은 최초 논의 후 입법 예고까지 4년, 일본은 최초 논의 이후 입법 예고까지 1.5년의 시간을 소요하면서 실태조사, 공청회, 영향력 평가, 중간보고 등을 했다”며 “한국은 최초 논의 후 입법 예고까지 단 3개월밖에 걸리지 않았고, 입법 예고 후 6개월도 지나지 않은 시점부터 계속해서 제정법의 국회 통과를 시도하고 있는데 매우 성급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