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한은총재 후보로 지명된 이창용 IMF 아시아태평양담당 국장/연합뉴스

한국은행 총재로 내정된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은 이론과 실무를 겸비하고 국내외를 넘나들며 경력을 쌓았다. 국내에서는 서울대 교수와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차관급)을 지냈고, 해외에서는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이코노미스트에 이어 한국인 최초 IMF 국장급 간부가 됐다. 190㎝ 장신이다. 하버드대 유학 시절 농구를 하다 무릎과 인대를 다쳐 군 면제를 받았다. 2009년 금융위 부위원장 시절 공개된 재산은 27억3015만원이었다.

◇ IMF 거친 국제통… 올초 “한국 급격한 재정확대 우려”

그는 오래전부터 복지를 확충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증세(增稅)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급격한 재정 확대에 대해서는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국가 부채 비율 40%를 마지노선으로 지켜야 한다는 생각도 지나치게 경직적이지만 단기간에 100% 가깝게 급증해도 부작용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무책임하다”며 “우리도 선진국이 됐으니 국가부채를 크게 늘려도 문제없다는 주장은 너무 안이해 보인다”고 했다. 2020년 코로나 사태를 맞아 문재인 정부가 재정 지출을 확대할 때도 “단기 경기부양이 불가피한 상황이지만 중장기적으로 재정 안정성을 훼손하지 않는 방식으로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 내정자는 올해 예정된 미 연방준비제도의 속도감 있는 금리 인상에 따른 후폭풍을 줄여야 하는 쉽지 않은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그는 올리비에 블랑샤르 전 IMF 수석이코노미스트를 비롯해 상당한 글로벌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 전직 경제 관료는 “미국 측 고위 인사들과 직접 교류하며 연준의 움직임을 면밀하게 주시하고 통화 정책의 방향을 정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가 금리 인상을 선호하는 매파일지, 반대로 금리 인하 경향을 보이는 비둘기파인지는 아직 판단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통화 정책에 직접 관여한 적은 없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2020년 코로나 초기에 인터뷰를 통해 “한국과 같이 국제통화를 갖지 못한 국가들이 선진국을 모방해 너무 과도하게 통화 팽창이나 재정 확대로 대응하면 환율이 급등하거나 이자율이 올라 위기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며 지나친 통화 완화 정책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MB 정부 금융위 부위원장 지내

1960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이 국장은 서울 인창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왔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고, 1989년 29세에 미국 로체스터대 교수가 됐다. 1994년 귀국해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를 지냈다. 그는 신사임당의 후손이다. 율곡 이이의 동생이며 서화가인 옥산 이우(1542∼1609)의 16대 종손이다. 이런 인연으로 서울대 교수 시절 대대로 물려받은 유물을 강릉시에 기증하기도 했다. 삼성서울병원 암병원장을 맡고 있는 이우용 교수가 그의 동생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인수위원으로 참여해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됐다. 2009년에는 G20(주요 20국) 정상회의준비위원회 기획조정단 단장을 맡았다. 지난 2011년 필리핀 마닐라에 있는 아시아개발은행(ADB)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발탁됐고, 2014년에는 IMF의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이 됐다. 당시 하버드대 시절 스승인 로런스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그를 IMF에 보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코로나에 걸려 후유증으로 고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년 11월 워싱턴DC에서 그를 만난 한 정부 고위 인사는 “그때만 해도 점심 먹으러 가는 길 중간에 쉬어야 했을 정도였다”고 했다. 최근에는 건강을 거의 회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상 첫 한은 총재 공백 우려

23일 그를 한은 총재로 지명했지만 다음 달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는 전례 없는 ‘총재 공백’ 상황에서 열리게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주열 현 총재의 임기가 오는 31일 종료되지만 이 내정자가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4월 1일부터 총재 임기를 수행할 수는 없다. 이 내정자는 오는 30일 미국에서 귀국할 예정이다. 인사청문회는 2014년 이주열 총재가 지명됐을 때 도입됐다. 당시 청문회 통과까지 16일이 걸렸고, 2018년 이 총재 연임 시에는 19일이 걸렸다. 따라서 다음 달 14일 예정된 금통위는 1998년 한은 총재가 금통위 의장을 맡게 된 이후 처음으로 한은 총재 없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 금통위원 중 한 명이 의장 대행을 맡게 된다. 한은 관계자는 “여야가 최대한 시간을 당기기 위해 노력하면 4월 금통위를 신임 총재가 주재하는 게 불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