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와 기업의 빚을 합산한 민간 부채가 작년 말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220.8%에 달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한국은행이 24일 밝혔다. 민간이 짊어진 빚이 경제 규모의 2.2배에 달한다는 뜻이다. 저금리가 오래 지속돼 싼값에 돈을 빌릴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진 가운데,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에 따른 주택 가격 급등으로 집을 사기 위해 가계가 많은 빚을 떠안게 된 것이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민간 부채 4540조원으로 경제 규모 2.2배

한은이 이날 발표한 ‘금융 안정 상황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으로 명목 GDP 대비 민간신용(가계·기업 부채의 합계)의 비율은 220.8%로 한은이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75년 이후 최고치다. 작년 명목 GDP가 2057조원이기 때문에 민간의 빚이 4540조원에 달한다는 뜻이다. GDP 대비 가계 대출은 106.1%, 기업 대출은 114.7%로 두 항목 모두 우리나라 경제 규모를 뛰어넘는다. GDP 대비 민간신용은 181.9%였던 2017년 4분기 이후 16분기 동안 한 분기도 빠짐없이 계속 상승했다. 경제 규모가 커지는 속도보다 민간의 빚이 불어나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는 얘기다.

GDP 대비 민간신용 비율은 문재인 대통령 집권 기간인 2017년 2분기(182.6%)에서 2021년 4분기(220.8%) 동안 38.2%포인트 뛰어올랐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 2분기(177.5%)에서 2017년 1분기(181.3%)까지 불과 3.8%포인트 오른 것과 비교하면 현 정부 들어 고삐 풀린 듯 부채가 폭발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명박 정부 시절 16%포인트, 노무현 정부 때 12.2%포인트 오른 것과 비교하더라도 유독 현 정부에서 민간의 빚이 두드러지게 늘었다고 볼 수 있다.

워낙 빚이 빠른 속도로 늘어난 탓에 가계의 대출 상환 능력이 저하되고 있다고 한은은 지적했다. 작년 3분기 기준으로 가계부채는 가계의 처분 가능 소득 대비 173.9%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작년 4분기 기준으로도 173.4%다. 세금 등을 떼고 실제 손에 쥔 연간 수입이 1억원이라면 빚은 1억7340만원이라는 의미다. 가계부채 대비 처분 가능 소득의 비율은 현 정부가 출범하던 2017년 2분기만 하더라도 152.9%였다. 이후 작년 말까지 매분기 처분 가능 소득 증가율보다 가계부채 증가율이 더 높았다.

◇자영업자 대출 900조원 넘어서

한은은 코로나 사태 이후 자영업자들의 매출이 줄고 빚은 늘면서 이들이 낸 대출이 부실화될 우려가 커졌다고 분석했다. 금융권의 자영업자 대출은 지난해 4분기 기준 909조2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3.2%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전체 가계대출 증가율이 7.6%였던 것과 비교하면 자영업자들이 빚을 훨씬 많이 냈다는 의미다. 자영업자 대출은 코로나가 확산하기 시작한 2020년 1분기 이후 매 분기 10% 이상 늘었다.

특히, 자영업자 가구 중 필수 지출액 및 대출금 상환액이 소득보다 더 많아 시간이 갈수록 궁핍해지는 이른바 ‘적자 가구’가 늘고 있어 경제 불안 요소가 되고 있다. 자영업 적자 가구는 코로나 확산 초기인 2020년 3월 70만 가구에서 지난해 말 77만8000가구로 증가했다. 전체 자영업자 가구의 16.7%에 달한다.

자영업 적자 가구들의 금융회사 빚은 코로나 초기인 2020년 3월에는 135조원이었지만 작년 말에는 42조원 늘어난 177조원에 달했다. 이 같은 액수는 전체 자영업 가구 금융부채의 36.2%다. 적자 가구 중 현재 갖고 있는 금융 자산으로 적자를 버텨낼 수 있는 기간이 1년도 안 남아 곧 대출이 부실화할 수 있는 ‘위험 가구’를 한은은 27만가구 정도로 추정했다.

한은은 오는 9월까지 연장된 자영업자에 대한 대출 상환 유예 조치가 종료될 경우 적자 가구의 부채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한은은 이런 대출 상환 유예 조치가 일괄적으로 종료될 경우 적자 가구의 금융 부채는 최대 58조원 급증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대출 상환 유예 등) 코로나 금융 지원 정책이 매출이 부진한 자영업자의 자금 사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점을 감안해 단계적인 출구 전략을 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