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 내 대표적인 매파로 꼽히는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7일 한 강연에서 "연내 기준금리를 3.5%까지는 올려야 한다. 인플레이션이 1970~1980년대만큼 심각하다"고 말했다. 사진은 불러드가 2일 세인트루이스 박물관에서 강연하는 모습. /UPI 연합뉴스

“중앙은행을 아무도 믿지 않을 때 폴 볼커(전 연방준비제도 의장)가 등장해 인플레이션이라는 ‘용(龍)’을 베어 죽였다. 그후에야 사람들은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제임스 불러드 미국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7일(현지 시각) 한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연준의 기준금리 결정 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이기도 한 그는 이날 “연말까지 기준금리를 연 3.5%로 올려야 한다. 현재 인플레이션이 1970~1980년대에 견줄 만큼 이례적으로 높다”고 말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연준이 기준금리를 연내 연 2%로 끌어올릴 것이란 전망이 대세였지만, 갈수록 연준 내 매파(금리 인상 선호)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불러드 총재가 언급한 ‘1970~1980년대’는 1·2차 오일 쇼크와 경기 회복을 원하는 정치적 입김에 휘둘린 연준의 완화적 통화정책이 겹치면서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던 시기다. 1979년 취임한 볼커 의장은 기준금리를 불과 6개월 만에 10%포인트 끌어올리는 등 강력한 통화 긴축을 강행해 인플레이션을 잡았다.

코로나 이후 경제활동 재개와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원자재 가격 급등이 겹쳐 인플레이션이 40년 만에 가장 심각해지자 ‘볼커 시대’로의 귀환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커지고, 그에 대한 우려도 함께 확산하고 있다. 볼커는 기준금리를 가파르게 올려 인플레이션을 해결했지만 그 과정에 미 경제는 실업률이 치솟고 경제성장률이 곤두박질하는 등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

◇불러드 연은 총재 “기준금리 연내 3.5%는 돼야”

현재 연준의 기준금리는 연 0.25~0.5%다. 연준 내 대표적인 매파인 불러드 총재의 주장대로 올해 말 기준금리가 3.5%에 도달하려면 남은 6번 회의에서 모두 0.5%포인트씩 금리를 올리는 이른바 ‘빅스텝 인상’을 단행해야 한다. “연내 기준금리를 올릴 수도 있다”라던 올해 초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발언과 비교하면 기준금리 인상 속도가 매우 빠르게 올라가고 있는 셈이다.

레이얼 브레이너드 미국 연방준비제도 부의장은 최근 "빠른 속도로 통화 정책을 긴축할 것"이라며 "폴 볼커(전 연준 의장)는 인플레이션이 궁극적으로는 고용도 해칠 것이라고 했다. 그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했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브레이너드가 미 백악관에서 취임식을 하는 모습. /로이터 뉴스1

연준의 대표적인 ‘비둘기파’(완화적 통화 정책주의자)로 꼽히는 레이얼 브레이너드 부의장의 입에서도 볼커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 상황이다. 그는 지난 6일 한 강연에서 “인플레이션 통제가 연준에는 가장 중요하다. 5월 회의 직후 빠른 속도로 통화 정책을 긴축할 것”이라고 발언해 시장에 충격을 줬다. 당시 브레이너드는 인플레이션의 위험을 경고하며 볼커를 소환했다. “40년 전 볼커는 인플레이션이 지속적인 경제 성장, 나아가 고용을 해치는 가장 큰 위협이라고 경고했다. 이를 기억해야 한다”라고 했다. 고용 악화를 우려해 기준금리 인상을 주저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달 의회에 출석해 “볼커처럼 불황을 일으키면서 기준금리를 올릴 수도 있나”란 질문을 받고 “역사가 ‘그렇다’라고 나를 기록하기를 바란다. 그는 위대한 경제 관료였다”라고 했다.

◇'볼커 시대’ 같은 긴축 충격 올까

볼커 전 연준 의장은 취임 당시 연 10% 수준이던 기준금리를 20%까지 끌어올렸다.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시중에 돈이 마르면서 기업 경영이 어려워지고 실업자 급증, 경기 침체가 발생하는 이른바 ‘경착륙’이 발생했다. 연준 건물로 시위대가 몰려와 군(軍)을 배치해야 할 정도였지만 볼커는 긴축을 강행했고 이후 약 3년간 이어진 악전고투 끝에 인플레이션을 꺾었다.

폴 볼커 전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1970년대에 미국에서 발생한 인플레이션을 기준금리를 10%포인트나 올리는 극단적 긴축을 통해 진정시켰다. 그 과정에선 실업률 급등과 경기 침체 등 부작용도 발생했다. 사진은 볼커가 생전인 2009년 독일 본에서 강연하는 모습. /유럽국민당

연준 인사들이 다시는 오지 않을 줄 알았던 ‘볼커 시대’를 언급하는 횟수가 늘어나자 시장엔 40년 전과 비슷한 긴축의 충격이 재발할지 모른다는 불안이 번지고 있다. 이달 들어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올라 3년 만에 최고치인 연 2.67%로 상승했다. 국채 금리가 오르면 그동안 초저금리의 힘으로 상승해온 증시에도 악재다. 주리언 티머 피델리티자산운용 글로벌경제 이사는 최근 보고서에 “연준은 인플레이션과 싸우면서 경제를 해치지 않겠다는 도박 같은 모험을 하고 있다. 지금으로선 연준이 시행하려는 충격 요법을 견딜 수 있도록 경제의 ‘체력’이 견고하기를 소망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국도 심상치 않은 상황이다. 물가상승률이 10년 만에 최고치로 높아지는 등 인플레이션이 심각하다. 그렇다고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너무 빨리 올릴 경우 코로나로부터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경제가 다시 고꾸라지고 막대하게 불어난 가계대출의 부실이 급증할 우려도 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볼커는 경기 침체를 용인하고 물가와 싸웠지만 지금은 그러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쪽으로 쏠린 과격한 정책을 시행하기보다는 한은과 정부가 공조해 물가와 경기라는 두 가지 과제를 해결할 정책을 살얼음 디디듯 신중히 시행해나가야 할 때”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