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 공무원들에게 경찰처럼 단속·수사권을 부여하는 ‘특별사법경찰관(특사경)’ 제도가 법무부와 공정위 간의 갈등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얼핏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에 수사권을 갖게 되는 공정위의 힘이 더 세질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특사경이 검찰의 지휘를 받기 때문에 공정위가 검찰의 2중대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7일 인수위에 따르면, 법무부는 지난달 29일 인수위원회 업무 보고에서 공정위에 특사경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 등을 보고했다. 특사경은 전문 분야의 행정공무원에게 단속·수사권을 주는 제도로, 현재 관세청·금융위원회·식품의약품안전처 등에 부여돼있다. 세관 직원이 밀수를 단속하거나 금융위가 주가조작을 단속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 법무부 “공정위에 특별사법경찰권 주겠다” 인수위에 보고, 공정위 재계 다 반발

인수위가 아직 특사경을 본격적으로 검토하는 단계는 아니다. 인수위 관계자는 “아직 법무부 제안 수준이다”라고 했다. 공정위 특사경은 윤석열 당선인의 공정거래 관련 공약에도 없는 내용이다. 법무부의 여러 보고 중 하나였을 뿐이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공정위는 특사경이 논의되는 것 자체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공정위는 특사경이 전속고발권 폐지보다 검찰의 힘을 비대화하는 조치라고 반발한다. 공정위 관계자는 “만약 검찰이 그동안 요구하던 대로 전속고발권을 폐지한다면 검찰은 시시콜콜한 공정거래 사건까지 다 맡아야 하지만 특사경으로 가게 될 경우 시시콜콜한 사건은 공정위에 맡기고 굵직한 사건 위주로 수사지휘권을 발동할 수 있다”고 했다. 검찰이 구미에 맞는 사건을 선별하는 한편 공정위를 수족으로 부릴 수 있다는 것이다.

◇형사처벌은 공정거래법 취지와 충돌

형사처벌을 전제로 하는 특사경 제도가 공정거래법과 충돌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정거래 사건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한 변호사는 “공정거래법은 범죄자를 구속하거나 제재를 가하기보다는 기본적으로 시장 경쟁을 회복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며 “공정위는 전문적 지식과 경제적 관점에서 여러 현안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경제 부처의 성격이 강하다. 특사경 도입으로 경쟁 정책을 더 잘 집행할 수 있다는 근거가 없다”고 했다.

또 공정거래 사건은 불법 공매도나 자본시장 교란 행위처럼 불법 여부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에서 일반 형사사건과 차이가 있다.

검찰과 공정위 사이에 낀 재계는 공정위보다도 한층 더 특사경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재계 관계자는 “특사경 도입 시 ‘처벌 만능주의’로 흐를 수 있다”며 “공정거래 사건은 경영상 판단인지 위법인지 애매한 경우가 많아 시정명령 같은 중간 단계가 있어야 하지만 검찰의 수사 지휘를 받게 된다면 ‘모 아니면 도’식으로 무죄 아니면 처벌로 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검찰과 공정위 밥그릇 싸움이란 시각도

특사경 갈등은 전속고발권에 이어 기업 사건의 관할권을 둘러싼 법무부와 공정위의 힘겨루기 2라운드라는 시각도 있다. 전속고발권은 공정거래법 등 공정위 소관 법률 6개를 위반했을 경우 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이 기소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공정위는 문 정부 초기에 전속고발권 폐지가 논의될 때 이를 찬성했다. 표면적으로는 전속고발권이 ‘기업들 봐주기’ 통로로 전용됐다는 데 대해 공정위도 책임을 통감한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그러나 문 정부의 모토가 상생·공정 경제였기 때문에 문 정부 내에서 공정위의 위상은 매우 높았고, 이로 인해 전속고발권이 없더라도 공정 경제 이슈 주도권은 뺏기지 않는다는 계산이 있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정권 초 경제장관회의 안건 1번이 항상 ‘공정 경제’ 관련 이슈였다”고 했다. 실제로 공정위는 대기업 구내식당 운영 문제까지 간섭할 정도로 칼날을 휘두르며 위세가 등등했다.

문재인 정부는 초기에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는 쪽으로 방침을 정했다가 임기 중반부터 검찰과 마찰을 빚으면서 검찰을 견제하려 전속고발권을 유지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한 대형 로펌 관계자는 “전속고발권 폐지에 실패한 법무부와 검찰이 특사경이라는 새로운 제도를 내세워 공정위 견제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