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강력한 긴축을 예고한 가운데 국채 금리가 상승하고 증시가 하락하는 등 시장에 불안이 번지고 있다. 사진은 12일 하나은행 딜링룸 모습. 이날 코스피와 코스닥지수는 각각 1.0%, 0.9% 하락했다. /뉴시스

“요즘 채권 트레이더들 목표는 돈 벌기가 아니라 덜 까먹기입니다. 1000억원 넘게 털리는(손실 보는) 회사가 속속 나오는 지경입니다.”

한 증권사 채권 트레이더는 요즘 트레이딩 룸 분위기에 대해 “대혼돈 그 자체”라고 말했다. 40년 만의 최대 수준인 인플레이션을 누르기 위해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빠른 속도로 기준금리를 올리겠다고 시사하자 채권 금리가 급등하고 증시가 하락하는 등 글로벌 시장에 공포가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채 등 채권 금리가 오르면 대출 금리 등이 따라 오르기 때문에 지난 2년 동안 초저금리의 힘으로 상승해온 증시엔 악재다. 대출자의 이자 상환 금액도 불어나 경제가 가라앉을 위험이 있다. 인플레이션 부담과 경기 침체 우려가 동반 고조되는 가운데 14일 총재 공석 상태로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한국은행의 고민도 깊어지게 됐다.

환율도 불안하다.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지난 3월 2년 만의 최고치인 1242.8원을 기록한 뒤 계속 1200원대를 넘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12일에는 전날보다 3.1원 오른 1236.2원으로 마감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이날 “환율을 정말 예의 주시하고 있고 관찰하고 있다. 필요하다면 시장 안정 조치를 할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불안이 번지며 증시도 하락세다. 12일 한국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는 각각 전날보다 1.0%, 0.9% 하락했다.

◇불안한 채권 시장, 한전發 회사채 금리 급등도

3년 만기 국채 금리는 지난 11일 10년 만에 최고치인 연 3.19%에 거래를 마쳤다. 12일엔 소폭 하락(-0.08%포인트)했지만 여전히 3.1% 선에 머물고 있다. 10년 만기 국채도 연 3.3%를 넘어서며 7년10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11일엔 3년 만기 국채 금리가 30년 만기보다 높아지는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미국 국채 금리도 급등하고 있다. 11일 10년 만기 미 국채 금리는 전일보다 0.07% 포인트 오른 2.79%에 거래를 마쳐 2.8% 선에 육박했다. 2018년 12월 이후 최고치다.

회사채 시장도 불안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이 물가 안정을 위해 전기료 동결을 예고하고 나서 한국전력공사(한전) 채권 금리가 급등하며 회사채 시장 전체를 불안에 빠뜨리고 있다. 한전은 전기 요금을 올리지 못해 지난해에만 6조원 가까이 적자를 기록했고 운영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올해 1분기에만 10조원어치 회사채를 발행했다. 한국 회사채 발행량의 약 40%에 달하는 막대한 물량이다. 한전 채권의 공급이 급증하면서 이 채권의 금리는 연일 급등해 12일엔 한 달 전보다 약 0.9% 높은 연 3.6%까지 상승했다.

◇총재 공석인데 금통위 금리 올릴까?

연준의 주요 인사들은 앞다퉈 강한 긴축을 시사하는 발언을 작정한 듯 내놓으며 불안에 불을 지피고 있다. 연준 내 대표적인 비둘기파(완화적 통화정책 선호)로 꼽히는 찰스 에번스 시카고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12일 “올해 연말까지 기준금리를 연 2.25~2.5%로 올리는 방안에 반대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연준은 지난달 기준금리를 ‘제로(0)’ 수준에서 0.25~0.5%로 한 차례 올렸는데, 에번스가 언급한 수준이 되려면 연내 남은 6번 회의에서 적어도 두 차례는 ‘빅스텝’(0.5%포인트) 인상을 단행해야 한다. 지난 7일에는 매파(통화 긴축론자)인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은 총재가 연내 기준금리를 연 3.5%까지 올려야 한다고 했다.

찰스 에번스 시카고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11일 "연말까지 기준금리가 연 2.25~2.5%가 되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이 경우 남은 6번 회의에서 적어도 두 번은 '빅스텝(0.5%포인트)' 인상을 해야 한다. 사진은 에번스 총재가 2020년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석한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금융시장 불안이 확산되는 가운데 시장의 관심은 14일 열리는 한은 금통위에 쏠려있다. 이달 초까지만 해도 총재가 공석이라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하긴 무리라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이달 초 발표된 3월 한국 소비자물가 상승률(4.1%)이 약 10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는 등 인플레이션이 악화해 다음 달 말 열리는 5월 회의까지 기다리기 위험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금융투자협회의 채권 전문가 설문 결과, 이번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인상 혹은 동결하리라는 전망이 각각 50%로 팽팽히 맞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