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사를 하는 이창용 신임 한국은행 총재/연합뉴스

이창용 신임 한국은행 총재는 21일 “지금 한국 경제는 대전환의 기로에 서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취임식에서 “코로나 위기 이후 뉴노멀(새로운 기준) 전환의 도전을 이겨내고 더 도약할지, 아니면 고령화·생산성 저하로 ‘장기 저성장(secular stagnation)’에 빠질지 예측하기 어려운 시기”라고 했다.

이 총재는 뉴노멀에 대해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과 세계화 후퇴 흐름”이라고 규정하며, “신기술 확보 경쟁, 지정학적 경제 블록화 등으로 국가 간 갈등이 심해질 것”이라고 한국 경제를 둘러싼 환경을 진단했다.

그는 “경제 정책의 프레임(틀)을 과감히 바꿔야 한다”며 “민간 주도의 질적인 성장을 도모하고, 소수의 산업과 국가로 집중된 수출·공급망도 다변화하는 구조 개혁을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그는 “과거와 같이 정부가 산업정책을 짜고 모두가 밤 새워 일한다고 경제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고도 했다.

문재인(오른쪽) 대통령이 21일 청와대에서 이창용 신임 한국은행 총재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청와대

이 총재는 역대 어느 총재보다 거시 경제와 관련한 진단과 대책을 적극적으로 거론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한은 본연의 역할이 물가와 금융 안정인데 왜 이렇게 큰 거시적 담론을 이야기하는지 의아할 수 있겠지만 우리 경제가 당면한 중장기적 도전을 생각하면 우리 책임이 통화정책의 테두리에만 머무를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장기 저성장의 늪에 빠지면 헤어나기가 어렵고, 그러면 통화정책의 효과가 제약될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한국 경제의 위험 요인으로 양극화와 부채 문제를 꼽았다. 그는 “양극화는 성장 잠재력을 훼손할 수 있다”며 “지식 집약 산업으로의 전환 과정에서 소득 불평등이 확대되고 인구 고령화로 청년 실업과 노인 빈곤, 지역 간 불균형 문제도 커지고 있다”고 했다. 가계와 정부 부채에 대해 그는 “부채의 지속적 확대가 자칫 붕괴로 이어지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다는 점을 과거 경험으로 알고 있다”며 “부채 연착륙에 관심을 둬야 한다”고 했다.

이 총재는 정부와 대화를 늘리겠다고 예고했다. 그는 “정부와의 소통에 대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음을 잘 알고 있지만 소통한다고 독립성이 저해되는 것이 아니다”고 했다. 그는 “시대적 과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정부, 시장, 민간 기관과 건설적 대화가 반드시 필요한 때”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