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금융의 확산에 따라 ‘디지털 전환’이 은행권의 최대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개발자 구인난을 극복하기 위한 은행권 전략이 다양해지고 있다. 경력직 개발자 수시 채용이라는 기존의 소극적 방식으로는 실력파 개발자를 영입할 수 없다는 한계를 절감했기 때문이다.

문과 출신의 무경력 개발자를 IT 직군으로 과감하게 채용하는가 하면 숨어 있는 실력파 개발자를 발굴하기 위해 개발자 채용만 전담하는 ‘전문 스카우터’를 뽑는 은행도 나왔다. 은행권 관계자는 “대부분의 개발자들은 자유로운 IT 스타트업 문화에 익숙하기 때문에 보수적 조직인 은행으로 옮기려 하지 않는다”며 “개발자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은행들이 채용 방식을 파격적으로 바꾸고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1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케이뱅크에 입사한 문과 출신 신입 개발자 3인방이 지난 9일 서울 중구 을지로 케이뱅크 본사 앞에서 힘차게 도약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채널플랫폼개발팀 윤맑은이슬(25)씨, 지급결제개발팀 정제일(27)씨, 여신개발팀 진소희(28)씨. /김연정 객원기자

◇케이뱅크, 문과생을 신입 개발자로 채용

케이뱅크는 지난달 채용연계형 인턴십(3개월)을 거쳐 테크 부문 신입사원 8명을 정규직으로 선발했다. 경쟁률이 100대 1에 달했다. 그런데 이 중 3명이 문과생이다. 경희대 국문학과 출신의 윤맑은이슬(25)씨와 서강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진소희(28)씨, 성균관대 사학과(컴퓨터공학 복수전공) 출신의 정제일(27)씨가 그 주인공이다. 모두 1~3년가량 IT를 공부해 개발자로 변신했다.

케이뱅크 관계자는 “대학에서 무엇을 전공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며 “인턴십 기간에 보여준 실력과 잠재력만 보고 뽑았다”고 했다.

IT 비전공자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바늘구멍’이라는 인터넷은행의 취업 문턱을 넘을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이들 세 사람은 “국비 지원 IT 교육 프로그램과 인터넷 강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윤맑은이슬씨는 “IT 쪽은 양질의 자료가 무료 또는 비싸지 않은 가격에 인터넷에 올라와 있어 비전공자라도 독학으로 따라잡기 쉬웠다”고 했다. 유튜브 채널 ‘노마드 코더’와 IT 교육 플랫폼 ‘인프런’, ‘생활코딩’ 등에 올라온 동영상 강의가 유용했다고 한다.

정제일씨는 “비싼 사설 코딩학원에 다니지 않아도 민·관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프로그래밍 강의를 수강하면 비전공자도 충분히 역량을 쌓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씨는 “흔히들 국비 지원 교육이 사설 교육보다 질이 떨어질까 우려하거나 공부량이 많아 따라갈 수 있을까 염려하는 경우가 많은데 절대 그렇지 않다”며 “커리큘럼도 탄탄하고 한 달에 80% 이상 출석하면 최대 40만원 취업장려금까지 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개발직에 대한 ‘벽’을 느끼는 취업준비생들에게 진소희씨는 “수학적 머리가 없어도 탐구심과 사고력만 있으면 문과생도 얼마든지 잘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코딩의 핵심은 논리력이기 때문에 다른 공학 분야에 비해 수학이나 과학 과목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인터넷은행 최초로 신입 직원 공채에 나선 케이뱅크는 앞으로도 과감하게 신입 개발자를 선발하겠다는 계획이다.

◇”숨은 진주 찾아라” 개발자 발굴하는 리크루터도 따로 뽑아

KB국민은행은 지난 3월 말부터 ‘ICT 리크루터’라고 이름 붙인 전문가를 뽑고 있다. 용어 그대로 정보통신기술(ICT·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y) 분야의 직원 채용을 전담하는 전문가다. 플랫폼 기업 등에서 개발자 채용 업무를 2년 이상 해본 사람이 지원할 수 있다. 최종 선발되면 SNS 탐색이나 입소문 등을 통해 국민은행이 스카우트할 만한 실력파 개발자를 선제적으로 발굴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신한은행은 디지털 부서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직원들을 인사 파트에 배치해 개발자 채용을 돕고 있다. 하나은행과 우리은행도 IT 직군으로 입사한 직원을 인사팀에 배치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선수가 선수를 알아본다고 하듯이 IT 분야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경력직으로 지원한 개발자의 실력을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