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둘 아지즈 빈 살만(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장관이 5일(현지 시각) 오스트리아 빈에서 ‘석유수출국기구(OPEC)플러스’ 장관급 회의가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손을 들고 있다. 23개 산유국 협의체인 OPEC플러스는 다음 달부터 하루 200만배럴씩 원유 생산을 줄이기로 합의했다. /AFP 연합뉴스

산유국들이 하루 원유 공급량의 2% 감산에 합의함에 따라 최고점을 지나 하락세를 보이던 국제 유가와 국내 물가가 다시 상승할 가능성이 커졌다. 국제 유가가 100달러를 돌파할 경우 국내 물가상승률이 6%를 넘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23개 산유국 협의체인 ‘석유수출국기구(OPEC)플러스’가 다음 달부터 하루 200만배럴씩 원유 생산을 줄이기로 합의한 5일(현지 시각) 뉴욕상업거래소에서 11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날보다 1.24달러(1.43%) 오른 배럴당 87.76달러로 마감했다. WTI 가격은 3거래일 연속 오르며 지난 9월 14일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3거래일간 상승률은 10.4%로 지난 5월 13일 이후 최대 폭이다.

원유 가격 상승은 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지난 6월 WTI가 122달러까지 치솟자 6~7월 국내 물가상승률은 6%를 넘었다.

하지만 긴축에 따른 글로벌 경기 침체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에 유가가 100달러를 넘지 못할 것이라는 반론도 적지 않다. 기획재정부도 200만배럴 감산이라는 주요 변수가 발생한 것은 맞지만, 물가가 10월에 정점을 찍을 것이라는 기존 전망을 변경할 시점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6일 기자 간담회에서 “감산이 실제 유가를 급등시킬 요인이 될지 아니면 현 유가 하향 추세가 이어질지 지켜봐야 한다”며 “2~3개월 전 말한 전망에서 변함이 없다”고 했다.

◇유가 100달러 넘으면 6%대 고물가 재발 가능

올해 물가 급등 배경에는 고유가가 있었다. WTI가 100달러를 돌파한 지난 3월 한국 물가 상승률은 11여년 만에 처음으로 4%대에 진입했고, 3개월 뒤 6%대로 직행했다. 6월(6%)·7월(6.3%) 물가상승률은 아시아 외환 위기 때였던 1998년 11월(6.8%) 이후 24년 만에 최고치였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3월 국제 유가가 하루 평균 100달러를 기록할 경우 소비자물가가 1.1%포인트 상승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9월 물가상승률(5.6%)에 대입하면, 물가가 6.7%까지도 오를 수 있다는 뜻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이번에 유가가 100달러를 다시 치고 올라가면 물가 상승 압력이 높아지는 것은 맞는다”고 말했다.

OPEC플러스의 감산 소식이 전해지자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4분기 브렌트유 가격 전망을 기존 100달러에서 110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골드만삭스는 “이번 감산과 겨울철 수요로 인해 원유 재고는 계속해서 줄 것”으로 전망했다.

유가 외에도 우크라이나 사태의 악화, 미국 금리 인상과 이에 따른 고환율 등 물가를 자극할 변수들은 여전히 남아있다. 5일 유럽연합(EU)이 러시아산 원유 값에 상한을 두는 제재안을 통과시키자 러시아는 “제재가 역풍으로 작용할 것이다. 러시아의 석유 생산이 일시적으로 감소할 수 있다”고 반발했다.

유가가 올라 물가 정점이 뒤로 밀리면 순차적으로 금리 정점도 밀린다. 물가를 잡기 위한 고금리 정책이 계속될 경우 그만큼 경기 침체 가능성도 높아지게 된다.

◇”중국 침체에 유가 100달러 못 넘을 것” 전망도

하지만 모든 연구기관이나 전문가들의 의견이 유가 급등을 전망하는 것은 아니다. 에너지 전문 분석 기관인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현재 석유는 세계적으로 초과 공급 상태다. 연구원은 산유국들이 감산을 해도 이 추세는 변하기 어려운 것으로 본다.

이는 세계의 공장인 중국 경기가 둔화되고 있는 영향이 크다. 중국이 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석유 소비 비율(17%)은 미국(18%)에 이어 둘째로 높다. 그런데 중국은 제로(0) 코로나 정책에 따라 주요 도시를 봉쇄하면서 산업 활동이 크게 둔화됐다. 최근 세계은행에 따르면 중국은 올해 2.8%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작년(8.1%) 대비 성장률이 3분의 1 토막 나는 셈이다.

이상열 에너지경제연구원 미래전략팀장은 “산유국 감산으로 유가가 오를 수 있지만 중국 경제 둔화 요인을 넘지는 못할 것”이라며 “유가가 100달러 이상으로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