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기준금리 3% 시대로 들어서면서 예금 금리와 대출 금리가 모두 뛰는 가운데, 예금자들은 고금리에 웃고 대출자들은 고금리에 눈물짓는 극과 극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여유 자금이 있는 5060세대나 자산가들은 예금이자가 늘어나지만, 2030세대 등 주택담보대출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는 뜻)’ 한 대출자들은 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허리가 휘고 있다. 예금 금리가 뛰어 ‘고금리 특판 예·적금’이 쏟아져도 호주머니가 비어있어 엄두도 내지 못한다. 문재인 정부 시절 부동산 유무가 자산 격차를 벌렸다면, 이제는 여유 자금 격차에 따른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해지는 중이다.

게다가 최근 채권시장 불안에 따라 은행들이 자금 조달을 위해 앞다퉈 예금금리를 올리는 상황 역시 예금자들에게만 유리하다. 이렇게 이자를 많이 주고 조달한 자금이 늘어나면 대출 금리를 더 높이 밀어올릴 수밖에 없어 대출자들에게는 불리하다.
◇금리 뛰니 예·적금이 1등 재테크
여윳돈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고금리 상품이 줄을 잇는 요즘이 재테크 봄날이다. 주식처럼 원금 손실 우려도 없고 6%대 이자까지 보장되기 때문이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은행 1년 정기예금 금리가 최고 연 4.68%로 올라선 데다 일부 저축은행에선 조건 없는 최고 연 6.5% 예금(1년)도 등장했다. 10억원을 넣으면 세후 이자만 5500만원이다. 어지간한 직장인 1년치 연봉이다.
뭉칫돈은 은행으로 몰리고 있다. 4대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10월 한 달 동안 40조1349억원 늘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은행의 10억원 초과 저축성 예금(정기예·적금, 기업자유예금, 저축예금) 잔액은 787조9150억원으로 1년 전에 비해 71조6800억원(10%)이나 급증했다. 10억원 넘는 고액 계좌가 1년 새 1만개나 늘었다.
이러니 은행들은 ‘큰손’ 고객을 모시려 파격적인 마케팅도 벌이고 있다. 한 은행은 10월 한 달간, 자사 PB 고객에 한해 1년 정기예금 금리를 연 4.8%로 제공했다. 이 은행의 일반 정기예금 최고금리는 연 4.6%인데, 금융자산이 많은 PB 고객들에게는 훨씬 더 높은 금리를 준 것이다. 통상 수시입출식 통장에는 이자가 거의 붙지 않지만, 잔액 1억원 이상인 PB 고객 수시입출식 통장에는 연 3.28%의 특별금리를 적용해주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절세 혜택을 볼 수 있는 국고채나 저축보험 금리가 연 4% 이상으로 오르는 등 재테크 선택지도 다양해지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그야말로 돈이 일하는 시대가 왔다”며 “현금이 많은 진짜 부자나 사업가, 법인들은 이자 수입이 늘어나는 일만 남았다”고 했다.
◇대출 많은 경우라면 최악의 상황
반면, 거액의 대출을 보유한 직장인들은 울상이다. 다달이 대출 원리금이 불어나 정기예·적금에 묶어둘 현금이 없는 데다, 막상 고금리 예금에 가입하더라도 예치금이 적다 보니 세금(15.4%)을 뗀 최종 이자도 미미하기 때문이다. 최근 가계대출(주택담보·전세·신용) 금리 상단이 13년 만에 모두 7%를 돌파했고,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의 기준이 되는 코픽스(자금조달비용지수)는 10년 2개월 만에 최고치로 올라있다. 한은이 올 들어 ‘빅 스텝(금리 0.5%포인트 인상)’을 2번이나 밟으면서 대출 금리는 빠르게 오르는 중이다.
직장인 커뮤니티에는 “이자 내려니 허리가 휜다” “(고금리) 특판 너무 가입하고 싶은데 넣을 돈이 없어 우울하다” 등의 글들이 수시로 올라온다. 한 30대 회사원은 “1억을 넣으면 연 500만원을 이자로 벌 수 있는 예금금리 5% 시대가 열렸다는 기사를 볼 때마다 박탈감이 느껴진다”며 “고금리 특판에 은행마다 오픈런(영업 전부터 줄 서 기다리는 현상)이 벌어진다는데 그럴 시간도, 그럴 돈도 없다”고 했다.
◇은행들은 역대급 이자이익
이런 가운데 4대 은행은 역대급 이자 이익을 쌓고 있다. 올 들어 지난 3분기까지 4대 은행의 총 이자이익은 23조7757억원에 달한다. 금리 인상기를 맞아 예대마진(예금금리와 대출금리의 차이에 따른 이익)이 커졌기 때문이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가계 예대금리차(정책서민금융 제외)를 집계하는 19개 은행 가운데 11곳이 지난 8월보다 9월에 예대금리차가 커졌다. 금융권 관계자는 “고금리 시대에 은행들은 그야말로 호황”이라고 말했다.